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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융합 콘진원, 색깔이 없다

음식을 먹다 보면 각각의 재료의 맛이 잘 살아나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맛있는 음식이 있고,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는 음식도 있다. 그래서인지 섞어찌개’를 잘한다는 집은 손에 꼽을 정도다. 재료의 세심한 맛을 살릴 줄 아는 주방장의 배려와 내공 쌓인 손맛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콘텐츠산업을 융합해서 육성하겠다던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을 보면 딱 맛없는 섞어찌개가 떠오른다. 6월 1일자로 나주로 이전하고 나서는, 맛 없어서 냉장고 속에 넣어두고 존재자체도 잊어버린 그런 섞어찌개처럼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게임만 놓고 보면 ‘이런 것을 하고 있다’며 자신을 알리는 민간이 만든 게임인재단이 더 나아 보인다.

애당초 콘진원의 탄생은 겉모습적인 효율을 강조한 MB 정부의 오판이었다. 정치권에서 보기에는 게임, 영화, 음악, 만화의 문화적 감수성이 거기서 거기인, 비슷한 것으로 보였나 보다. 물론 게임이나 영화가 다른 문화영역이 복합되는 종합예술적인 형태를 띠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개체로써 완성된 모습으로 잘 융화가 된 결과만 놓고 말한 부분도 적지 않다. 쉽게 말해, 최상의 재료를 사용해 조화로운 맛을 내는 주방장이 있기에 전체적인 음식이 맛있는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콘진원의 목표는 전문가(Specialist) 양성이 아니라 콘텐츠산업을 아우를 수 있는 팔방미인(Generalist)를 육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계에서 활동해 왔던 전문가를 한 곳에 뭉쳐놓고 모든 업무를 맡게 뒀다. 팔방미인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는 관리자층에 해당되는 말임에도 전 직원을 어떤 콘텐츠라도 일당백인 용사로 키우려고 한 것이다.

결국 십 년이 넘게 게임산업, 영화 방송산업에 특화된 전문가들은 전문성은 사라졌다. 주무부처인 문화부조차 게임과, 영상과 등 장르 중심으로 부처를 나눠둔 상황에서 제대로 협업이 될 리가 없었다. 콘진원의 무모한 실험은 결국 3년 만에 실패를 인정했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아까웠다.

음식 얘기에 시시콜콜 과거를 들추는 이유는 나주로 내려간 콘진원이 최근 실무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부를 해체하고 팀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면서 각기 색깔이 다른 콘텐츠산업의 특성을 살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에 일말의 기대를 거는 것이다.

물론 정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콘진원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를 위한 융복합 ‘콘텐츠코리아랩’을 지원하는 역할도 할 수 밖에 없다. 본부를 없애던 콘진원이 ‘콘텐츠코리아랩 본부’를 둔 점도 이러한 사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본부가 각 분야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태스크포스팀(TFT) 형태로 운영되지 않는 한, 과거 콘진원과 같은 과오는 되풀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콘진원 홈페이지에는 매주 새로운 소식과 사업이 올라온다. 분명 일은 하고 있는데, 게임업계 종사자들 피부에 와 닿는 건 없다. 기대하고 왔다가 ‘우리랑 상관없네’라며 돌아서는 그런 풍경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총체적이고 입체적인 지원은커녕 전문성까지 사라진 콘진원이라면 차라리 과거로 돌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섞어찌개의 맛이 이상하다면 먼저 재료의 본 맛부터 살리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발전적 해체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데일리게임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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