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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엎어진 게임, 좋아하는 개발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발자에게 게임은 자식과도 같다. 그만큼 애착을 갖고 만들고 흥행이 안돼 서비스 중지된다면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다. 잘 만든 게임 하나로 부자가 되기도 하고, 길거리에 나앉기도 하는 개발자에게 게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건 보통의 일반적인 회사 이야기고, 엔씨소프트 개발자들에게는 해당이 안되나 보다. 지난주 금요일 엔씨 신작 '프로젝트 혼'의 개발이 전면 중단 됐다. '시장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공금횡령 사건 뒤 벌인 감사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몇 년에 걸쳐 동영상만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들린다.

엔씨가 '프로젝트 혼'에 건 기대는 컸다. 게임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에는 김택진 대표가 참여했고, 극장을 빌려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게임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 지스타에도 기대작이란 이름으로 출전했다. 그런 프로젝트가 엎어졌으니 엔씨로서도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개발팀은 해체됐고, 개발자들을 다른 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상한 건 그런 개발자들을 부럽다는 듯이 보는 주변 시각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자식 같은 게임이 '사산' 됐는데 오히려 좋다니. 아이러니한 이 상황도 설명을 듣다 보니 이해가 됐다.

"개발 단계서 가장 어려운 것이 경영진이나 고위급으로부터 개발상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하고 검사를 받는 실제 개발단계예요. 허들을 넘고 나서가 더 힘들죠. 이때부터는 밤샘도 해야 하고, 진척도에 대한 '쪼임'도 받습니다. 반면, 어떤 게임을 만들지 구상하고 콘셉트 잡는 시점은 상대적으로 업무하중이 덜 합니다. 몇 년 '쉬엄쉬엄' 기획하면서 초기 구상했다가 '빡센' 본격 개발을 앞두고 프로젝트가 엎어졌으니, 다시 처음부터 쉬엄쉬엄으로 돌아갈 텐데 부러울 만도 하죠."

엔씨는 최고 개발자들이 모인 세계적인 개발사다. 지난해 기준 국내 직원수만 약 2200명에 달한다. 대다수가 개발자다. 날고 긴다는 좋은 스펙은 개발자가 수두룩하고, 당연 좋은 대우와 지원을 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에 맞는 일을 하고 있냐는 것은 예전부터 의문이었다. 2200여명의 직원들이 '리니지' 시리즈, '아이온', '블레이드&소울'로 먹고 산다. ('길드워' 시리즈는 해외 개발자들의 성과다.)

개발 과정에서 게임이 숱하게 엎어지는 일은 부지기수고 '프로젝트 혼' 개발중단도 이러한 연장선에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엔씨는 늘상 신작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차기 프로젝트가 망가지면 회사가 힘들 것이란 말은 '리니지2' 때부터 계속 반복돼 온 레퍼토리다. 그럼에도 현재의 엔씨가 있게 한 '리니지'가 여전히 매출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도 아이러니다.

망할 이유가 없는 회사서 좋은 지원을 받으면서 개발을 하는 것. 개발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현실이겠다만, 이것이 자칫 나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엔씨는 조직을 점검하고 회사 설립 당시의 벤처정신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때다.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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