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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 리니지2, '먹자' 꼭 잡는다…불굴의 추적자

수많은 게임들이 플레이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벌어집니다. 게임 내 시스템, 오류 혹은 이용자들이 원인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은 게임 내외를 막론한 지대한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데일리게임은 당시엔 유명했으나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져가는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는 '게임, 이런 것도 있다 뭐', 줄여서 '게.이.머'라는 코너를 마련해 지난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게.이.머'의 열 세 번째 시간은 바로 2003년 10월 1일 상용화 서비스에 돌입해 현재까지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리니지2' 13서버에서 2006년 1월경 발생한 희대의 '먹튀' 사건인데요. 한 이용자의 불굴의 추적이 결국 범인을 심판대로 올릴 수 있게 된 사건입니다.

[게.이.머] 리니지2, '먹자' 꼭 잡는다…불굴의 추적자

◆280명이 잡은 안타라스, 기쁨도 잠시

2006년 1월 13서버 이용자들은 레이드 몬스터 '안타라스'의 공략을 시도했습니다. '안타라스'는 당시 '리니지2'의 최상위급 레이드 몬스터로 280여 명의 이용자들이 동시에 레이드에 참여할 정도였습니다.

몇 시간을 걸려 드디어 레이드에 성공한 280여 명의 이용자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습니다. 여간해서는 잡기 힘든 몬스터인데다 막대한 보상은 당연히 주어지는 몬스터였기 때문이죠.

안타라스
안타라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이용자들의 앞에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바로 '안타라스'가 드랍한 수많은 희귀 아이템을 두명의 '먹자'가 루팅하고 도망치는 모습이었습니다.

범인은 'R부자'와 '너나랑살래'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은신 기능이 있는 캐릭터로 몰래 레이드 현장에 숨어 있다가 레이드가 종료되자 뛰어나와 아이템을 챙겨 몰래 남의 아이템을 가져가는 행위인 '먹자'를 한 것입니다.

범인들은 바로 도망쳤고 당시 두 '먹자'가 훔쳐간 아이템 중 당시 200만 원을 호가하는 아이템도 있을 정도로 피해액도 컸습니다.

'안타라스'가 드랍한 아이템은 당시 시세로 약 41억 아데나(약 1100만 원)에 달하는데다 280명이 모여 몇시간을 시도해 겨우 잡은 레이드의 보상을 박탈당했으니 이용자들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몇 년을 공들인 게임도 접고 "너, 꼭 잡는다"

분노는 커져만 갔고 사건이 알려짐에 따라 다른 서버, 다른 게임 이용자들도 그들의 행위를 비난하기에 이릅니다. 시스템 상으로는 가능한 일이어도 법은 최소한의 도덕일 뿐, 선을 넘은 일임은 누구나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해당 이용자들이 속했던 혈맹들은 그들에게 현상금을 걸기까지에 이릅니다. 비난이 심해져 혈명을 해산하기도 했고요.

사건을 접한 이용자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는 모습
사건을 접한 이용자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는 모습

하지만 이 레이드를 진행한 진행자의 고초만 했을까요. 당시 레이드를 진행했던 진행자는 누가 뭐라고 비난하지도 않았고 잘못도 없었지만 스스로 책임을 지고 몇 년간 즐긴 게임까지 접었습니다.

안타라스 레이드 진행자 '서소리스'는 범인을 잡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게임에서 사라졌죠. '서소리스' 이용자는 피해자일 뿐이었지만 피해를 본 레이드의 진행을 담당했다는 책임감에 도저히 게임을 즐길 수 없었습니다.

◆집념과 협조로 몇 년만에 드디어 '검거'

당사자들이 게임에서 떠난지 몇 년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해당 사건이 점차 지워져가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서소리스'가 돌아왔습니다. 해당 범인의 검거 소식과 함께요.

'서소리스'는 선언대로 게임을 접고 오직 본업과 '먹자'를 검거하기 위해서만 시간을 할애했다는 후기를 남겼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엔씨소프트의 적극적인 협조로 당사자를 찾는데까지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피해 아이템에 있었던 고가의 아이템 안타라스의 귀걸이
피해 아이템에 있었던 고가의 아이템 안타라스의 귀걸이

문제는 당시에는 게임 아이템의 현금 가치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경찰에서 해줄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범인을 찾아놓고도 법적 근거가 없어 처벌이 불가능했던 것이죠.

해서 그는 자비로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진행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판례가 없기에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 뻔했고 다른 소송들에 비해 피해액도 크지 않아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거절했습니다. 아예 온라인 게임의 특성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도 많았다는 게 '서소리스'의 후일담이었습니다.

결국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변호사를 어렵게 구하고 사비로 선임 비용을 대며 수년간의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범인인 'R부자'가 소속됐던 '백의민족' 혈맹의 군주인 '100년변비' 이용자의 협조라는 점입니다.

공교롭게도 사건의 당사자인 '너나랑살래'가 '100년변비' 이용자와 친분이 있었던 사이였던 것 입니다. 수사에 적극 협조한 '100년변비' 이용자는 '너나랑살래'의 계정을 구입했다는 김모씨의 연락처를 확보해 연락을 취했지만 김모씨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연락처를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이 점을 허위 사실로 의심한 '100년변비' 이용자는 이것에 집중해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고, 그 결과 IP 추적 등의 수사로 결국 김모씨가 범인으로 밝혀졌던 것이죠.

사실 레이드 아이템이 분실된 것이 진행자의 책임일 수는 없습니다. 어쩔수 없는일로 치부하고 그냥 게임을 즐길 수도 있었던 것을 자신의 명예와 레이드에 참여한 수많은 이용자들을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소모하며 범인을 법정에 세운 것이죠.

또한 이 사건 덕분에 온라인 상의 아이템이 법적으로 현금가치가 인정되는 판례를 남기게 됐습니다. 이후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들에 관한 소송이 활발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요.

◆죗값은 당연하지만 조치가 아쉬웠던 사건

'R부자'의 주인으로 밝혀진 강모씨는 재판부로부터 횡령죄에 대하여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배임죄에 대하여 유죄로 벌금 200만원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사실상, 법률상으로 보관하는 자가 재물을 소유자에게 돌려주지 않는 행위이고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이죠. 즉 일반적인 도난 사건과는 다른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번 사건은 레이드 보스가 드랍한 아이템을 모든 이용자가 습득할 수 있었던 시스템적인 약점을 파고든 것으로 당시에는 이렇다할 대책이 없었습니다. 이에 개선이 필요함을 인지한 엔씨소프트는 먹튀와 관련된 규정을 업데이트하고 시스템적으로도 지휘 채널장에 속한 파티원만 아이템들 습득할 수 있는 패치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리니지2'에서는 이와 비슷한 사건 발생 시 GM이 개입해 해결을 돕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이후 또 다른 피해는 방지할 수 있었지만 해당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용자들과 이 사건으로 인해 시간과 비용 모두를 소모했던 당사자들은 누구도 보상해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또한 시스템적인 헛점으로 인해 한 명의 범죄자가 발생한 안타까움도 빼놓을 수는 없겠습니다.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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