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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 어쌔신크리드3, 전설의 오역 '불이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벌어집니다. 게임 내 시스템, 오류 혹은 이용자들이 원인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은 게임 내외를 막론한 지대한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데일리게임은 당시엔 유명했으나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져가는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는 '게임, 이런 것도 있다 뭐', 줄여서 '게.이.머'라는 코너를 마련해 지난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게.이.머'의 스물 한 번째 시간에는 '어쌔신크리드3'의 한글화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이 게임은 유비소프트의 유명 프랜차이즈 IP인 '어쌔신크리드' 시리즈의 5번째 메인 스토리를 다룬 게임인데요. '에치오 아우디토레'의 이야기를 다룬 3부작 이후 새로운 주인공 '코너'가 등장하는 첫 작품입니다.

전작만큼의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국내 이용자들에게만은 다른 의미에서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왜 그런 것인지 지금 알아보시죠.

[게.이.머] 어쌔신크리드3, 전설의 오역 '불이야!'

◆'어쌔신크리드'는 어떤 게임?

'어쌔신크리드'는 2007년 첫 작품 발표 이래 모든 시리즈가 평균 900만 장 이상씩 판매되며 개발사인 유비소프트의 대표 프렌차이즈 시리즈로 자리잡았는데요.

이용자는 앱스테르고사에서 제작한 애니머스라는 가상현실 기계를 통해 과거를 체험한다는 기본적인 설정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지라 음모론을 다루는 작품임에도 역사적 사료 활용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장점으로는 특유의 잠입·암살 액션이 꼽히는데요. 암살자가 주인공인 작품이라 잠입과 은밀함을 기본 콘셉트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금 과장된 모습이나 액션 등으로 암살이라기에는 뭐한 부분도 있지만 특유의 재미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플레이에 익숙해진 이용자라면 암살 대신 무쌍을 찍기도 합니다
플레이에 익숙해진 이용자라면 암살 대신 무쌍을 찍기도 합니다

당초 개발 돌입 당시에는 3부작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캐릭터와 게임성이 이용자들의 호평을 받자 2편의 후속작인 '어쌔신크리드: 브라더후드'와 '어쌔신크리드: 레벨레이션'을 연달아 발매하는 등 많은 시리즈가 발표됐습니다.

'어쌔신크리드3'의 배경은 미국 독립전쟁으로 이용자는 주인공 아메리카 원주민과 영국인의 혼혈인 어쌔신 '코너'가 되어 게임을 플레이하게 됩니다. 프랑스-인디언 전쟁, 브래독의 원정, 보스턴 대학살, 홍차 조례, 보스턴 티 파티, 미국 독립 전쟁 등 실제 역사 속 사건들에 이용자가 개입하게 되는데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만큼 고증을 통해 구현한 다양한 건물들과 의복들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상이나 스탭롤이 스킵 불가능한 것인데요.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20분 가량의 스탭롤을 그대로 다 봐야만 했습니다. 다만 스탭롤 안에서 다양한 떡밥 투척 및 회수, 캐릭터들의 대화가 이뤄져서 강제로 보는 것이지만 재미도 다소 느낄 수 있었는데요. 스탭롤 끝에 영상을 넣는 경우도 있어 싫어도 끝까지 보게 됩니다.

이러던 것이 2010년 출시된 '어쌔신크리드: 브라더후드'부터는 영상 스킵이 가능하게 됐는데요. 다만 엔딩 스탭롤은 여전히 스킵이 불가능해 아직도 이용자들은 강제로 스탭롤을 시청하고 있습니다.
독립 전쟁의 한복판을 누비는 암살자로 플레이하게 됩니다.
독립 전쟁의 한복판을 누비는 암살자로 플레이하게 됩니다.


◆정식 넘버링 3탄 발매! 그런데 번역이…

여러 편에 걸친 시리즈들에서 이용자들에게 결코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던 만큼 '어쌔신크리드3'가 발매되자마자 바로 예약 구매를 통해 소프트를 구매했는데요. 유비소프트가 발매한 게임 중 가장 높은 예약 판매량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발매 첫 날 만에 350만장이 판매됐고 2012년 기준 판매량 1200만 장을 기록했을 정도로 이용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받아 본 국내 이용자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는데요.

바로 번역이 문제였습니다. 다양한 부분에서 번역 오류와 상황에 맞지 않는 단어 의미가 선택된 것인데요. 대표적인 번역 오류로 보스턴 학살 사건 당시 영국 육군 장교가 총격을 지시하는 대사인 "Damn you, Fire!"를 "빌어먹을, 불이야!"로 번역하며 오랫동안 이용자들의 패러디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게.이.머] 어쌔신크리드3, 전설의 오역 '불이야!'

이 장면은 허공에 권총을 쏘는 소리를 듣고 군중이 군인에게 발포한 것으로 착각해 "Damn you! Fire!"라고 외치며 영국군이 군중에게 사격을 가하는 장면인데요. 직역하면 '제기랄! 발사!'정도로 할 수 있는 것을 상황에 맞지 않게 번역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번역 오류가 있었는데요. 구입할 수량 'Mount'를 구입할 '탈것'으로 미니맵의 아이콘을 설명하는 부분을 칭하는 범례 'legend'를 '전설'로 아이템을 얻을 때 '코너의 은신처'라고 나와야 하는 걸 전작 주인공인 '에지오의 은신처'라고 했습니다. 소모품 'consumable'을 '섭취 가능'으로 번역하기도 했죠. 물 속에 잠긴 상태에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기능 '잠수'를 '다이빙'이라고 번역한 것은 애교에 가까웠습니다.

아예 위치가 변해서 '돼지 우리'에 들어가라고 할 부분을 '들어와'라고 써놓기도 했고 캐릭터간 대화를 하던 중 갑자기 서로간의 어투가 바뀌기도 했습니다.

이용자들이 실소를 터트릴 정도로 가장 어이없었던 번역은 바로 '행상인'을 '마약 판매원'이라고 번역한 것이었는데요. 'Peddler'가 '마약 판매원'이란 뜻도 있지만 '행상인'이란 뜻도 같이 있어서 헷갈린 것으로 보입니다. 게임 내에 마약도 있나 하고 찾아 다닌 이용자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 밖에도 배를 운행해 보는 챕터에서 '키를 잡으세요'를 '모자를 쓰세요'로 번역했는데요. 배를 조종하는 '키'를 뜻하는 'helm'과 투구를 뜻하는 'helm'을 헷갈린 것으로 보입니다. 표기는 같지만 그 전에 이미 배를 운행한다는 대화문이 있었기에 이를 참조했다면 없었을 실수죠. 게다가 'helm'은 투구지 모자는 아니죠.

◆오역의 원인은 유통사, 번역가 모두의 책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창 번역에 대한 논란이 커질 무렵 번역자 본인이 해명글을 올렸습니다. 번역자는 거의 28만 자에 달하는 게임 내 영어들을 번역하는데 검수할 시간이 이틀 정도 밖에 없었다고 밝혔는데요. 그는 번역을 진행하는 과정과 환경이 극히 열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틀도 개인적인 일이 있어 제대로 검수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번역을 위해 주어진 자료가 오디오와 스크립트 뿐이라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전했는데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상황을 보고 번역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번역가의 해명글 일부
번역가의 해명글 일부

스크립트와 오디오만 가지고서는 군인들이 총을 쏘는 상황을 '불이야!'라고 오역할 수도 있긴 합니다. 오디오 파일로만 상황을 들었을 경우 총을 쏘는 '펑'소리를 불꽃이 터지는 소리로 오해했을 가능성도 인정됩니다.

캐릭터들의 대사와 연출, 컷씬 등이 게임 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게임에서 플레이도 해보지 못하고 스크립트 몆 장만 갖고 번역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인데요.

이런 상황을 제공한 유통사의 책임은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번역가의 문제 역시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스크립트만으로 번역한 점을 감안해도 결과물이 초벌 번역 수준이라는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원래 문장과는 다르게 국내 정치와 연관시켜 넣은 자의적 번역도 지적을 받았는데요. 원작에 없는 괜한 내용을 넣어 번역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스토리가 완전히 이해되지 않을 수준은 아니지만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거나 하는 오역들로 이용자의 몰입을 방해했는데요. 결국 시리즈 사상 최악의 번역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산 넘어 산, 3편보다 못한 4편 번역

비난이 이어지자 유통사도 속편에서 번역자를 교체 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3편보다 못한 번역이라는 평가를 받고 말았습니다.

'어쌔신크리드3'에서는 그래도 문맥으로는 대화가 통했지만 이번엔 시작부터 한 파트의 대화 전체를 오역해버리는 등 오역 비율이 엄청났습니다.

[게.이.머] 어쌔신크리드3, 전설의 오역 '불이야!'

'지명 수배도'를 뜻하는 'Wanted Level'을 '원하는 레벨'로 'Mine'을 '지뢰'가 아닌 '광산'으로 난간을 뜻하는 'Ledge'를 사다리로 오역했죠. 게임의 첫 챕터인 '소매치기를 붙잡는다'를 '소매치기와 맞붙는다'로 번역해서 미션의 목적 조차 이해할 수 없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향유고래인 백경을 흰 돌고래로 오역했고 '그의(his) 애니머스'를 'HIS 애니머스'로 에드워드 켈리(Edward Kelley)를 에드워드 켄웨이(Edward Kenway)로 번역하는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대화 부분에서는 오역이 더욱 심해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요. 후반부엔 전체적으로 의역을 빙자한 오역 비율이 높아 대화 자체가 어색하기까지 했습니다.

기둥이란 뜻의 'Beam'을 빔이라고 발음 그대로 번역하는 부분에서는 역사 기반 게임이 갑자기 SF 게임이 된 느낌을 주기도 했죠.

◆게임성을 번역이 망친 사례

이 같은 문제는 유통사가 제대로 된 번역가를 고르지 않았고 예산 및 시간을 아끼느라 검수를 위한 추가 인력을 두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특히 지난 3편에서도 동일한 문제를 겪었음에도 반성 없이 똑같은 사태가 벌어지도록 방치했다는 점에서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는 평가도 많았습니다.

유통사에서 번역의 퀄리티를 생각했다면 게임에 관한 스크린샷, 인물 배경 정보 등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완성된 번역을 입힌 베타버전을 테스트하면서 오역 및 식자 상태를 확인해야 할 것인데요. 게임성을 해칠 정도의 오역으로 이용자들의 혹평이 이어졌던 만큼 신작에서는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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