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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 게임이 친구를 기억하는 방법

수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벌어집니다. 게임 내 시스템, 오류 혹은 이용자들이 원인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은 게임 내외를 막론한 지대한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이에 당시엔 유명했으나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져가는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는 '게임, 이런 것도 있다 뭐', 줄여서 '게.이.머'라는 코너를 마련해 지난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오늘은 게임 속에서 떠나간 이들을 추억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하는데요. '게.이.머'의 두 번째 시간에 다뤘던 '울티마'에서는 이용자 'Sir Death'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GM이 그의 장례식에 참가해 그 이용자의 이름을 붙인 NPC 돌고래를 만들어 주었던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렇듯 남겨진 이들이 떠난 이를 기억할 수 있도록 게임 속에 여러 장치를 만들어두기도 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블리자드가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게임 속에 마련한 것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엎어진 프로젝트도 기억으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아웃랜드, 황천의 폭풍 지역의 남쪽에 떠다니는 공중 지형 중 홀로 푸른색을 띄고 있는 구조물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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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면 세로로 위에서부터 'N, O, V, A'는 알파벳이 점멸합니다. 이 구조물이 바로 '스타크래프트: 고스트'의 주인공인 '노바'의 무덤인데요.

'스타크래프트: 고스트'는 블리자드가 개발하던 콘솔용 TPS 게임으로 '스타크래프트'의 설정을 그대로 이어받은 작품이었습니다. 2002년에 발표돼 E32005에도 6분 동영상이 등장해 많은 '스타크래프트' 유저들을 설레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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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블리자드는 2006년 3월 24일 게임의 개발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했는데요. 이후 2014년 개발을 공식적으로 취소했습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저런 무덤을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요. 안에는 블러드 엘프 여성 캐릭터의 유령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없다고 합니다. 유령이 있다 사라진 이유는 많은 추측들이 있지만, 유령이라고 생각되는 노바가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에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많은데요. 그 뒤 '히어로즈오브스톰'에도 등장하더니 DLC 콘텐츠인 '노바 비밀 작전'에서는 당당히 주인공의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유령이다 뭐다 힘들었지만 요새는 여기저기 많이 나오고 솔직히어로즈오브스톰
유령이다 뭐다 힘들었지만 요새는 여기저기 많이 나오고 솔직히어로즈오브스톰

그야말로 유령 상태에서 다시 부활했기에 무덤 안 유령이 사라진 셈이네요.

◆퀘스트로 남은 형의 기억 '어떤 용사 이야기'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연속 퀘스트인 '어떤 용사 이야기'는 십자군 봉우리에서 대영주 티리온 폴드링이 주는 퀘스트로 스컬지 역병에 걸려 죽어가는 은빛십자군 성전사 브라이든브래드가 주인공인데요.

별다른 어려움 없이 희귀등급 아이템을 보상으로 제공하는 고마운 퀘스트이기에 많은 이용자들이 수행하지만 13개의 퀘스트가 연속해서 이어지는 바람에 그 내용을 잘 읽어보지 않는 이용자가 많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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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퀘스트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온라인 기술 부분 부사장 로버트 브라이든베커(Robert Bridenbecker)의 친형 브래드포드(Bradford C. Bridenbecker)가 2007년 젊은 나이에 암 진단을 받고 요절하자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추가한 퀘스트입니다.

티리온 폴드링은 고립된 동료들을 구해 탈출시키고 홀로 스컬지 부대에 맞서 시간을 끌다 실종된 성전사 브라이든브래드를 찾아달라는 퀘스트를 이용자에게 주는데요. 얼음왕관 북동쪽에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하게 되지만 그는 이미 스컬지 역병에 감염돼 시한부 목숨인 상태입니다.

죽어서 스컬지의 언데드가 되어 과거의 동료들과 싸우게 되는 것은 절대로 싫지만 다른 이에게 역병을 옮기게 되는 것은 그보다 더한 고통일 거라며 그곳에서 조용히 죽어가길 원하는 그를 구하기 위해 이용자와 티리온은 백방으로 방법을 찾아 나서는데요.

나루의 힘으로 역병을 벗어나 명예를 지킬 수 있게되는 브라이든브래드
나루의 힘으로 역병을 벗어나 명예를 지킬 수 있게되는 브라이든브래드

어렵게 구한 귀한 것들도 그의 목숨을 연장시킬 뿐 그를 구하지 못하다 결국 사망 후 나루의 은총을 받아 질병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고통 받으면서도 더 큰 피해를 막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조용히 생을 마감하려는 그의 모습에 많은 이용자들이 감동을 받은 퀘스트로 남아있죠.

◆통곡의 동굴 위 영혼의 치유사 '코이터'

이번에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오리지날 시절의 이야긴데요. 북부 불모의 땅에 위치한 저레벨 인스턴트 던전 '통곡의 동굴 입구' 위쪽 언덕에는 영혼의 치유사 '코이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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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치유사에 이름이 있는 것은 아예 없는 일은 아니지만 게임 속에서 사망한 캐릭터를 부활시켜 주는 역할이기에 보통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아야 하죠. 그렇지만 '코이터'는 살아있는 상태의 이용자에게도 보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영혼 치유사 '코이터'가 바로 블리자드 게임 디자이너였던 미첼 코이터(Michel Koiter)를 모티브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미첼 코이터(중앙)
미첼 코이터(중앙)

아르헨티나 태생인 코이터는 그의 형 르네 코이터과 함께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데요. 실력을 인정 받아 18세가 된 2003년 그의 형과 함께 나란히 2003년 블리자드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그 후 그는 블리자드 창립자 중 하나인 '샘 와이즈 디디에'의 '천둥의 후예들'이라는 디자인 팀에 배속되게 되는데요. 샘 와이즈는 '워크래프트3'에 등장하는 블레이드 마스터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블리자드의 디자이너죠.

여기서 코이터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콘셉트 디자인을 맡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필드 중 하나인 '불모의 땅'을 자기가 직접 디자인 했습니다.

이 '불모의 땅'은 얼라이언스와 호드 이용자 모두가 각 지역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들르는 초기 지역이기에 많은 이용자들이 거쳐가는 곳인데요.

그가 디자인한 불모의 땅은 이름과는 다르게 광활한 초원과 산맥 나무가 햇살을 입고 어우러져 안온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 어느 날 미첼 코이터는 네덜란드에서 심장 질환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당시 그의 나의 19세의 일인데요.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영역에서 재능을 펼치다 요절한 그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그를 위해 그의 형인 르네 코이터는 동료들의 동의를 얻어 그가 디자인한 '불모의 땅'에 그의 무덤을 디자인했는데요. 이것이 바로 영혼의 치유사 '코이터'와 그의 뒤쪽에 마련된 작은 무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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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형이 디자인한 무덤에는 미첼의 이니셜인 'MK'가 새겨져있고 무덤 위에 칼을 들고 똑바로 누운 오크 모양의 상이 있는데요. 이 오크 상 역시 코이터의 베타 테스트 캐릭터 '트윈크루저'(twincruiser)와 동일하게 만들어졌다는 게 블리자드 측의 설명입니다.

언덕 위에서는 그가 디자인한 '불모의 땅'이 잘 내려다 보입니다. 자신이 디자인한 곳이 어떻게 구현됐는지 보지 못하고 떠난 그를 위한 형의 배려가 아닐까요.

◆십년이 지나도 '코이터'를 추모하다

코이터는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 캠페인 '워필드 장군의 선물' 미션 후 플레이되는 영상에서 다시 등장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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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2'의 주인공인 짐 레이너가 사망한 마린의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에서 'M.코이터'라고 쓰여진 인식표를 회수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코이터는 저그를 상대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용사로 재등장한 것이죠.

십여년이 지나서도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블리자드. 그만큼 직원들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네요.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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