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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 '좀비'가 시체가 아니라고?

다양한 게임을 즐기다 보면 '이 캐릭터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라던가 '얘랑 얘는 좀 비슷한데?'하는 생각해본 적 많으시죠? 이 캐릭터들은 서로 베낀(?)게 아니라 콘셉트가 겹치거나 모티브가 겹친 경우가 많습니다.

해서, 이런 게임 속 같은 콘셉트의 캐릭터들이 왜 그렇게 그려지고 배경 설화나 전설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전설의 고향'의 일곱 번째 시간에는 '좀비' 캐릭터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좀비… 다 아시죠?

좀비하면 누구나 비슷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게이머라면 굉장히 익숙한 소재인 것인데요. 게임에 등장하는 것을 떠나 아예 '좀비물'이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로 게임과 영화 등에서 널리 쓰이는 소재죠.

이런 좀비들의 공통된 특징을 보면 반쯤 썩어있는 모습에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나 맹목적으로 상대를 해치는 광포함 그리고 성수 등에 약한 등 인간의 시체에 정령이나 악마가 작용해 만들어내는 '언데드'(Undead)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Dying Light'의 한 장면
'Dying Light'의 한 장면

그 중에서도 물리거나 할퀴면 똑같이 좀비로 변하는 '감염'에 대한 공포가 크죠. 퇴치하기도 힘든데 한 번이라도 물리면 똑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옆에 있던 동료가 금새 적이 되어버리는 것과 동일한 기분 일테니 말이죠.

그런데 이 좀비에 대한 특징 중 몇 가지는 대중매체에 의해 덧씌워진 것이라는데요. 어떤 점이 나중에 추가된 것일까요?

◆어원을 따지자면 종교적 언어

'zombie'(좀비)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요. 하나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부두교에서 숭배하는 정령과 비슷한 개념의 수많은 르와(Loas) 중 뱀 로아인 담발라 웨도(Damballah Wedo)의 또 다른 이름 'nzambi'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과 '즘비'라는 이름을 가진 르와의 사투리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 단어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건 1838년으로 당시엔 'zombi'로 표기되었으나, 1900년대에 e가 추가돼 오늘날의 'zombie'가 단어로써 탄생했죠.

단어가 확정된 후에는 훨씬 빠르게 전파됐습니다. 일부 아프리카 카리브해 지역 종교와 공포스러운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되살아난 시체를 통칭하는 말이 됐고, 비유적으로 반쯤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기도 하죠.

◆좀비의 탄생

좀비는 서아프리카의 민속종교인 부두교가 그 뿌리입니다. 18세기 서인도제도로 인해 강제로 이주된 서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만든 종교로 알려져 있죠. 현재는 아이티와 그 근방 국가에서 신앙을 얻고 있다는데요. 당시 혹사 당하던 노예들이 지친 심신을 달래줄 종교적 위안이 필요했고 그를 위해 만들어진 종교가 바로 부두교라는 것이죠.

[전설의 고향] '좀비'가 시체가 아니라고?

이것이 바로 부두교의 가장 큰 믿음 중 하나인데요. 죽은 사람을 보코르에게 데려가면 흑마법을 부려 다시 살려준다는 것이죠. 대신 모든 기억과 지성을 잃고 말까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 사람은 보코르의 말에 복종하게 되는데요. 그리고 이렇게 되살아난 존재를 좀비라고 부릅니다.

◆좀비라는 존재를 파헤친 학자 '웨이드 데이비스'

좀비에 대해 조사를 하던 중 흥미로운 책을 한 권 발견했는데요. 바로 1997년 발간된 책 '나는 좀비를 만났다'였습니다. 그는 TED 강연에서 10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바 있는 하버드대 출신의 인류학, 생물학 학위자이자 민속식물학 박사입니다.

TED 강연은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의 줄임말로 미국의 비영리 재단이 1984년부터 운영하는 강연회입니다. 정기적으로 기술, 오락, 디자인 등과 관련된 강연회를 개최하며 초대되는 강연자들은 각 분야의 저명 인사와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부분인데요. 이중에는 빌 클린턴, 앨 고어 등 유명 인사와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전설의 고향] '좀비'가 시체가 아니라고?

그는 1982년 초, 죽었던 사람이 좀비로 되살아났다는 뉴스를 파헤치기 위해 좀비의 고향 '아이티'로 급파되는데요. 현지에서 그는 '좀비 독약'에 주목하게 됩니다. 특히 죽은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것이 바로 '좀비 독약'의 효과라는 것을 밝혀내죠.

위험천만한 과정을 겪으며 독약 제조법까지 입수하며 여행도 끝인가 생각될 무렵, 그는 좀비에 대한 또 다른 진실을 알아내게 됩니다. 바로 좀비가 정치와 종교의 접점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사회 제어장치라는 점이었죠.

TED 강연 중인 웨이드 데이비스(출처 :TED.COM)
TED 강연 중인 웨이드 데이비스(출처 :TED.COM)

게다가 이를 실행하는 것은 아이티 정부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비밀조직이었는데요. 사실상 정체를 숨기거나 하지도 않는 '비장고' 등의 비밀조직은 아프리카에서 강제 이주당한 아이티 흑인들의 저항 속에서 파생돼 지금까지 이어져내려오는 나름 유서 깊은 그룹이었습니다.

이들은 국가가 정한 법을 위반하지는 않지만, 이웃에 해를 끼치는 인물들을 좀비라는 형벌을 통해 벌해왔는데요. 정부가 국법을 통해 내리는 형벌과는 별개로 조직이 재판을 열고 그에게 어떤 형벌을 내릴지를 결정하고 또 실행해왔습니다.

그들은 노예 제도와 독립으로 인해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는 다크히어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는데요. 그 방법이 좀비라니 어쩐지 섬뜩하네요.

◆좀비가 된 남자의 이야기

'나는 좀비를 만났다'에서는 좀비가 된 남자의 경험담도 전달하고 있는데요.

형벌로 좀비가 된 클레어비우스 나르시스라는 인물과의 문답을 통해 그가 겪은 기억을 책에 서술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물음에 그는 느리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대답해나갔다고 설명했는데요. 다른 이들에게 들었던 말만 되풀이하던 그에게 실망하고 있던 도중 나르시스는 갑자기 자신이 겪은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아이티에서 치러지는 장례식 모습
아이티에서 치러지는 장례식 모습

그는 좀비가 돼 자신이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모든 것을 제 3자가 된 느낌으로 다 들을 수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었고 눈도 떠지지 않았지만 의사가 가족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와 자신의 장례식에서 여동생이 흐느끼는 소리, 게다가 무덤에 묻히는 순간까지도 모든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죠.

그는 철저히 마비된 채로 자신의 장례식을 수동적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그의 기분을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섬뜩한 경험일 것 같네요.

◆전염성은 영화가 입힌 이미지!

좀비의 특성을 그려낸 영화들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1932년 작 '화이트 좀비', 1943년 작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같은 제목에 직접 좀비를 언급한 작품도 있었지만 이 시기의 좀비는 신체 곳곳이 훼손되거나 썩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자아와 말을 하지 못할 뿐 온전한 모습인 것이 아이티의 좀비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당연히 식인을 하려거나 사람을 해치려는 모습도 전혀 없었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DVD 표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DVD 표지

그러던 것이 1968년 조지 로메로(George A. Romero)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Day of The Dead) 이후 좀비에 대한 이미지는 확 달라지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사람을 물면 물린 사람도 괴물이 되는 기괴한 몰골의 괴물이 등장하는데요. 좀비가 가진 인간을 공격해 살점을 뜯어먹으려 하거나 증상을 전염시키려 하는 몬스터로서의 이미지는 사실 이 영화에 기인한 셈이죠.

재미있는 것은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는 한 번도 '좀비'라는 호칭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로메로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괴물들이 좀비라 불리기 시작했고 좀비의 보편적 모델이 됐죠.

◆친숙해진 만큼 우리에게 덧씌워지는 '좀비'

좀비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 바로 쇼핑몰에 갖힌 주인공들이나 쇼핑몰 안에 좀비들이 모인 모습일 텐데요. 이 장면 자체가 좀비라는 존재를 우리에게 덧씌우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소비하기 위해 노동하고 노동하기 위해 소비하는 끝없는 순환 속에서 점차 스스로의 모습이 훼손되는 우리의 모습이 쇼핑몰을 배회하며 자신을 소모하는 좀비의 모습과 동일다는 것인데요. 두 존재 모두 자본주의의 노예로 영원히 소비와 노동을 지속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본인만이 소모되는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이죠.

이런 점들이 좀비를 현대인의 공포에 대한 거울이라는 해석도 종종 등장하는데요. 1960~7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좀비가 등장하는 소설과 영화에서 좀비는 흔히 노동자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요. 자유주의 아래 자유롭게 노동력을 팔면서도 사물과 같은 취급을 받는 형상이 좀비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산업화 이후 자신이 인간이 아닌 체제의 부품 취급을 받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죠.

◆좀비가 등장하는 게임, 너무 많죠

'바이오하저드'의 좀비, 예전의 좀비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바이오하저드'의 좀비, 예전의 좀비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10년을 이어온 캠콤의 대표 프렌차이즈 타이틀 '바이오하자드'는 거의 대부분이 적이 좀비인 대표적인 좀비 장르의 게임입니다. 퍼즐 요소가 강했던 초기 작품에 비해 액션성이 강해져 점차 격렬하게 터져나가는 좀비를 볼 수 있죠.

건 슈팅 게임 '더하우스오브데드'도 역사를 가진 좀비 게임인데요. 스테이지 끝 부분에 항상 특수 능력을 가진 좀비 보스가 등장한다는 것도 이 시리즈의 특징입니다. 오락실에서 최종 보스에 도전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모두들 모여 구경했던 기억이 나네요.

[전설의 고향] '좀비'가 시체가 아니라고?

4인 협동 생존 FPS인 '레프트4데드'는 협동이 정말 중요한 게임으로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게임 오버가 되는 게임인데요. 또한 우정파괴 게임으로도 유명하죠. 조금의 방심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만큼 조금의 장난만으로 친구의 죽음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명의 만화 및 미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 '워킹데드'도 빼놓을 수 없죠. 2012년 GOTY(GAME OF THE YEAR)를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게임으로 유명한데요. 극한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생존자끼리의 갈등이 더욱 무섭다는 것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식물VS.좀비'는 PC버전에 이어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타워디펜스 장르였던 이전 모습을 벗어나 최신작에서는 TPS 장르로 변신해 '식물VS좀비가든워페어'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머리가 없는 좀비에게 닉의 머리를 연결하면 닉이 그 몸을 조종해 게임 진행을 돕기도 한다. 헌신의 아이콘 닉
머리가 없는 좀비에게 닉의 머리를 연결하면 닉이 그 몸을 조종해 게임 진행을 돕기도 한다. 헌신의 아이콘 닉

시원하게 좀비를 박살내는 '롤리팝체인소우'도 있는데요. 괴작으로 유명합니다. 남자 친구가 좀비에 물리자 감염이 뇌로 전이되기 전에 머리를 잘라 좀비를 변하는 걸 막았다는 오프닝부터 괴작의 냄새가 솔솔 나죠.

어떤 처치를 해 머리만 살아있는 남자 친구의 머리통을 허리춤에 매단채 펼치는 주인공 캐릭터의 현란한 액션과 의상만 해도 B급 액션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내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게임에서 소재를 넘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제는 아예 하나의 장르가 된 좀비. 그만큼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좀비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왔는데요. 지성이 없는 인간에서 사람을 공격하는 몬스터, 전염성을 가진 괴물, 얼마 전 개봉된 영화에서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진화된 생물체로까지 변했죠. 앞으로 좀비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전설의 고향' 이만 마칩니다.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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