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서브컬처 개념의 종주국이다. 세계 3번째 규모의 게임 시장을 가진 동시에,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서브컬처 소비층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9월25일부터 28일까지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린 '도쿄게임쇼 2025(TGS 2025)' 현장에서 유독 많은 한국 게임사들이 서브컬처 장르를 전시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현장을 돌아보니 한국 서브컬처는 예전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넥슨의 '블루 아카이브'와 시프트업의 '승리의 여신: 니케'는 일본 서브컬처 마니아들이 발길을 모으는 아키하바라와 이케부쿠로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트 이케부쿠로점 내에 있는 블루 아카이브 코너. 사이드에 마우스 패드가 있어서 사실상 2코너 정도 분량의 굿즈가 정리됐다.
애니메이트 이케부쿠로점 니케 코너. 아크릴 스탠드 상품이 주로 전시돼 있었다.
이케부쿠로의 오토메 로드는 한때 여성 타깃의 게임과 굿즈 상점이 줄지어 있는 거리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
다. 현지에서 만난 한 이용자는 "오토메 로드는 옛날 표현이다. 최근에는 니지산지 팬들이 많아져서 니지산지 거리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거리를 걸어보니 서브컬처 굿즈를 파는 작은 상점들이 이어졌고, 그 사이사이에 '블루 아카이브'와 '니케' 전용 코너가 자리 잡고 있었다.
네이버 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 한국 상품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코너의 규모는 현지에 깊게 뿌리내린 일본 IP나 중국 게임과 비교하면 작은 편이었다. 서비스 연혁과 상품 라인업의 차이가 체감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판매되던 굿즈들이 전시돼 있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한국어가 그대로 적힌 마우스패드, 네이버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 캐릭터 상품까지 눈에 띄어 국산 서브컬처의 확장 가능성을 짐작하게 했다.
이케부쿠로 소규모 매장에서 발견한 '니케'와 '블루 아카이브' 굿즈들.
상품 구성은 작고 꾸미기 좋은 캔 배지, 아크릴 스탠드, 벽걸이류가 주를 이뤘다. 피규어는 전문점이나 온라인에서 소비되는 흐름이 뚜렷했다. 소규모 매장에서는 '니케'의 존재감이 더 두드러졌다. 중국 게임들과 나란히 진열된 모습이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반면 '블루 아카이브'의 상품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서브컬처 축제 코믹마켓(코미케) 참가 부스 수와는 다른 양상이 흥미로웠다. 아키하바라 거리에서 대화를 나눈 현지 이용자는 "최근 '니케'가 조금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미디어믹스나 관련 상품이 더 자주 발매되기 때문 아닐까"라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아키하바라는 여전히 전철 역사 안부터 외부까지 '블루 아카이브' 광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키하바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전철역에 내리자마자 눈에 띈 건 대형 광고판이었다. 쇼핑몰 아뜨레 벽면에는 '블루 아카이브' 캐릭터 광고가 걸려 있었다. 기자가 '도쿄게임쇼' 취재차 일본에 방문할 때마다 그 자리에 '블루 아카이브' 광고가 걸려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에 대해서 현지 이용자는 "실제로 1년 내내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블루 아카이브' 광고가 걸려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키하바라 역내에서 영업 중인 요스타 오피셜 굿즈샵. '블루 아카이브' 비중이 7할은 넘어 보였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 요스타가 운영하는 공식 굿즈샵이 있었다. 매대의 상당 부분은 '블루 아카이브'로 채워져 있었다. 체감상 70%에 달했다. 중국 IP 상품과 '쿠키런' 코너가 함께 배치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거리를 걸으면서 본 '니케'와 '바이오하자드' 협업 광고는 시야를 잡았고, 현지 애니메이션과 중국 게임 광고도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키하바라 동키호테 내부에서도 '블루 아카이브'와 '니케' 등 한국산 IP 굿즈가 판매 중이었다.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사기 위해 자주 찾는 아키하바라 돈키호테에도 한국 게임 코너가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블루 아카이브'와 '니케' 굿즈가 마련돼 있었고, 외국인 방문객이 발길을 멈추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가격대는 낮았지만 통로가 좁아 상품을 천천히 구경하거나 직원에게 의견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니케'와 '바이오하자드' 컬래버레이션을 알리는 광고.
하루 동안 둘러본 일본 도쿄의 서브컬처 시장에서 한국 게임은 '블루 아카이브'와 '니케'가 쌍두마차처럼 이끌고 있었다. 여기에 네오위즈의 '브라운더스트2'가 컬래버레이션과 팝업스토어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두 거리를 걸으며 국산 서브컬처의 입지가 분명히 넓어졌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2년 전보다는 코너의 규모나 상품 구성 등이 늘어난 점은 분명했다. 그러나 깊게 뿌리내린 일본 IP와 정면으로 경쟁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