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양승혁 감독과 게임음악과의 인연은 한국 게임산업이 급성장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주로 하던 그가 한국에서 롤플레잉 게임들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레 게임음악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 게임 세계관은 대부분 중세 판타지를 모티프로 했고, 오케스트라를 활용한 클래식 계열 음악을 낼 수 있는 음악가가 필요했다. 덕분에 그 시기 시장의 니즈와 양승혁 감독의 역량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웅장한 클래식 음악 외에도 여러 장르를 즐기고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양승혁 감독은 "모든 장르를 좋아하다 보니, 한 장르만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도 듣는다"면서도 "어린 시절 대중음악 경험이 음악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여러 장르가 융합되는 게임 본질과 닮아 있어서 즐겁게 할 수 있다"라고 돌아봤다.
이름이 알려진 '오투잼', '마녀의 샘' 시리즈 등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등 글로벌 시장의 다양한 게임 음악에 참여했던 양승혁 감독은 최근 '라핀' 등 인디게임부터 '이터널리턴', '나이트크로우', '로드나인', '마비노기 모바일' 등의 대작 게임들까지 다채로운 사운드로 플레이어들의 몰입을 이끌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으로 '마녀의 샘'과 '라핀'을 꼽은 양승혁 감독은 "음악 제작 시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게임 음악은 플레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두 작품은 '음악 자체에 집중하자’는 기획 방향 덕분에 창작자로서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양승혁 감독이 게임 음악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것은 '상황별 다양성’이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경우 영상이 고정돼 있어 연출자가 의도한 스토리와 감정을 따라야 하지만, 게임은 이용자마다 경험이 다르고 상황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에 상황별로 다르게 작동하는 인터랙티브 뮤직이 필요하다며 "같은 상황도 어떤 이용자에겐 긍정적이고, 다른 이에겐 부정적인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음악에 기술과 디자인이 들어가야 하는 도전적인 구조다"라고 게임 음악 작업의 난점을 밝혔다.
한편 게임을 '문화'로 보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양승혁 감독은 "지금은 게임이 가장 큰 문화 콘텐츠"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오래 즐기는 것이 문화라면 게임이 선두라는 설명이다.

양승혁 감독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여러분이 즐겨주는 게임에 제가 무엇인가를 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보람"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인사를 전했다.
김형근 기자 (noarose@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