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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1등에게 상 주면 불법? 이벤트까지 딴지거는 게임'진흥'법

(출처='로스트아크' 홈페이지).
(출처='로스트아크' 홈페이지).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관위)가 인기 게임 '로스트아크'의 기념품 지급에 제동을 걸었다. 현행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진흥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스마일게이트는 12일 '카제로스, THE FIRST(더 퍼스트)' 1위 달성 기념품 지급 취소 사실을 공지했다. '카제로스 레이드 종막: 최후의 날'을 가장 먼저 공략하는 팀에게 '심연의 군주 카제로스 스태츄'를 증정하는 이벤트였지만, 게관위는 이를 '사행성을 부추길 우려가 있는 행위'로 봤다. 게임사가 "레이드를 가장 먼저 깨려면 유료 상품을 구매하라"고 유도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문제가 된 조항은 게임진흥법 제28조 제3호다. 이 조항은 '경품 등을 제공하여 사행성을 조장하지 아니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전체이용가 아케이드 게임에서 완구·문구류를 '경품지급장치'를 통해 제공하는 경우에만 대통령령 범위 내에서 허용된다. 일반적인 온라인·모바일게임은 사실상 경품 제공이 금지된 구조다.

이번 사안이 유독 논란이 되는 이유는, 해당 이벤트가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퍼스트 클리어(퍼스트 킬) 프로모션'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MMORPG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특정 보스나 던전의 '최초 공략 파티'에 명예를 부여하는 이벤트가 이어져 왔다. 단순한 사행 행위가 아니라, 난이도 높은 콘텐츠의 공략 경쟁을 유도하고 커뮤니티 참여를 높이기 위한 문화적 요소로 기능해 왔다. 이를 '건전한 경쟁문화'가 아닌 '사행'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문제다.

특히 '로스트아크'는 2023년 '카멘 THE FIRST', 2025년 '카제로스 THE FIRST'처럼 레이드 퍼스트 레이스를 공식적으로 운영해 온 대표적인 게임이다. 해외 MMORPG에서 일반화된 '월드 퍼스트 레이스' 문화와 유사한 형태로, 상위 이용자 경쟁을 축제화하는 목적이 크다. 이번 스태츄 지급도 동일한 맥락의 기념 성격이었으나, 모호한 경품 조항 해석 때문에 '사행성 우려'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이를 다른 스포츠와 비교하면 문제가 더 명확해진다. 많은 팀이 참여하는 토너먼트 경기에서 우승한 팀에게 기념 트로피를 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승하려고 비싼 선수와 장비를 마구 샀겠네"라고 삿대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게임이라면 사행성이란 잣대가 드리워지면서 '불법적인' 일이 돼 버리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했다.
국회에서는 이미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과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이 각각 경품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금지된 것 외 허용)으로 전환하거나 완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규제 합리화를 외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웹보드게임의 사행화를 이유로 개정안에 대해 반대되는 입장을 보이는 등 딴지를 걸고 있다고 한다. 결국 새로운 시대에 맞춘 법안을 제시해도, 주무부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꼬리표는 계속 따라붙게 되는 것이다. 게임을 K-콘텐츠 산업의 중추라고 추켜세우면서도, 규제는 풀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극단적으로는 경품 제공을 허용하면, 사후처리와 모니터링 업무가 늘어나니 그냥 지금 그대로 막아버리자는 행정편의주의적 사고가 원인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임이 본질적으로 사행성을 가진다는 전제를 들어내려는 시도 자체를 주무부처가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경품 제공 규제는 콘텐츠 산업 가운데 게임에만 유독 무겁게 적용되는 예외적 제도다. 영화·OTT·웹툰 등 다른 디지털 콘텐츠 사업자는 이벤트·보상·기념품 제공에 큰 제약이 없다. 반면 게임은 동일한 프로모션조차 사행성 판단 대상이 된다. 퍼스트 킬 이벤트처럼 경쟁 우위 달성에 따른 기념 패키지조차 규제 범주에 묶인 상황이다. 동일한 행위에 서로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 이유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위험하다'는 뿌리 깊한 인식 때문이다.

현행 조항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다. '사행성을 조장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문구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라 기관마다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크다. 사행성 판단 기준이나 경품 가치 기준 역시 부재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업자가 항상 규제 리스크를 지게 되고, '로스트아크' 사례처럼 평범한 이용자에게는 문제될 것 없어 보여도 해석에 따라 '사행성을 부추기는 위험한 이벤트'란 낙인을 찍을 수 있다. 경품 조항 개선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품 규제 개정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금처럼 모호한 상태가 유지될수록 행정 혼란은 커지고, 산업의 마케팅과 운영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퍼스트 킬 이벤트처럼 경쟁·기념·축제의 성격을 가진 문화적 프로모션까지 규제 범주로 해석된다면 산업 발전은 더욱 어려워진다. 규제가 필요하다면 사행성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사행성 모사 게임을 예외로 처리하는 등 '행정적 지원과 사후관리' 시스템을 강화하면 될 일이다. 사행성을 모든 게임물에 일괄 적용해 경품 제공을 막자는 주장은 최소한 게임산업 주무부처가 앞세울 명분은 아니다.

정부는 입버릇처럼 게임을 'K-콘텐츠의 수출 효자'라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제도는 여전히 '바다이야기' 시절의 사행성 프레임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하게 묶어 두고 있다. 빼어난 업적을 달성한 이용자에게 경품조차 줄 수 없는 법을 진흥법이라고 부르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명확한 기준 없이 막연한 공포심과 행정 편의를 위해 유지해 온 족쇄를 이제는 풀어야 한다.

서삼광 기자 (seosk@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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