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케니아 혈족의 주거지는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모든 구성원들이 새로운 거주지로 이동한 탓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경비병 레논이 지루한 눈빛으로 산등성이 위를 쳐다보았다.
그 말을 받은 것은 동료인 테일러였다. 레논과 테일러는 2인 1조로 아케니아 혈족이 살던 분지의 관문을 관리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적막한 주거지를 쳐다본 테일러가 말을 받았다.
“물러갔던 얼음 거인들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있지. 어쨌거나 관문을 지키는 관리인이 필요하지 않겠어?”
“답답해서 하는 말이야. 아무런 할 일이 없으니 심심해 죽겠어”
길게 하품을 하는 레온을 보며 테일러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필드에서 몬스터와 피 튀기게 싸우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일단 이곳에 있으면 다칠 일은 없으니 말이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둘의 고개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돌아갔다. 관문 안쪽에서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저벅저벅'
그들은 반사적으로 허리에 찬 무기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아직까지 철수하지 않은 녀석이 있었나?”
“모르지. 어쩌면 척후로 나온 얼음 거인일지도……”
두 초병의 이마에서 살짝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정말 척후로 나온 얼음 거인이라면 둘의 삶은 여기에서 끝난다. 강하기로 소문난 얼음 거인은 한낱 인간 병사 둘로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이내 어둠 사이에서 드러난 실루엣을 본 그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무기를 늘어뜨렸다. 안개를 뚫고 다가오는 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아만족이었다.

머리 위로 솟구쳐 오른 강인한 뿔에 가늘게 찢어진 눈, 단단한 턱 등등,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단숨에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 정도의 외모를 지닌 아만족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의 입가에는 두려움이 아닌 조소가 어려 있었다. 무시무시한 외모와는 달리 아케니아 혈족은 겁이 많고 싸움을 싫어하는 온순한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힘이 좋기 때문에 주어진 일은 잘 해내는 종족, 이것이 그들의 눈에 비친 아케니아 혈족의 모습이다.
홀로 모습을 드러낸 아만족은 흔들림 없이 관문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자 레논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정지하라!”
그 말에 걸음을 멈춘 아만족이 고개를 들어 관문 위의 레논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의혹 어린 시선을 본 레논이 곧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렸다.
“이런 아직 통역 마법을 작동시키지 않았어”
레논이 쓴웃음을 지으며 허리에 찬 수정구를 집어 들어 작동시켰다. 그 수정구에는 발렌시아드 연맹에서 쓰이는 공용어를 아케니아 혈족의 언어로 통역하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새로운 거주지로 향하는 아케니아 혈족인가?”
그 말을 들은 아만족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모습을 면밀히 살핀 레논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테일러가 걸어가서 관문을 작동시켰다. 원래대로라면 건장한 병사 열 명이 달라붙어야 열 수 있는 관문이었지만 마법을 걸어놓은 탓에 자연스럽게 열렸다.
'쿠르르르릉'
아만족이 느릿하게 관문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가 다가올수록 두 병사는 저도 모르게 떨려오는 몸을 느끼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