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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스스로 존재 이유 부정한 게임위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는 데일리게임이 9월1일 보도한 기자석 '게임위 고무줄 심의에 멍드는 게임사들'과 관련해 7일 반박 자료를 데일리게임에 보내왔다.

게임위는 데일리게임 기자석에 예시로 언급된 '큐라레: 마법도서관'과 '데스티니차일드 for kakao'가 서로 다른 기관의 심의를 받은 게임이기에 게임위가 '고무줄' 심의를 했다는 데일리게임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책임 회피하려 기관 존재 이유 부정한 게임위

게임위 반박보도자료 중 발췌
게임위 반박보도자료 중 발췌

게임위의 이같은 주장은 기관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이거나 기관의 격을 스스로 낮추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오픈마켓이 자체 등급분류를 통해 게임물을 유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켓별로 상이한 이용등급이 내려진 게임물에 대한 사후관리 주체는 게임위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1조의9(등급조정조치 등)에 따르면 '위원회는 자체등급분류 사업자가 등급분류한 결과가 등급분류 기준에 현저히 위배되거나 자체등급분류 사업자 간의 등급분류 결과가 상이한 경우 자체등급분류 사업자에게 등급을 조정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항목이 있다.

관련 법률을 살펴보면 구글과 애플 등의 자체등급분류 게임물까지 게임위의 관할 아래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위는 비슷한 수위의 노출 의상을 입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두 게임의 이용등급이 달라 '고무줄 심의'라고 지적한 데일리게임의 기자석에 "서로 다른 기관의 심의 결과이기에 게임위의 잘못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게임위 스스로 자체등급분류 사업자 유통 게임물까지 관리해야 할 기관의 의무이자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

또한 게임위의 이같은 주장은 스스로 자체등급분류 사업자와 동급으로 기관의 격을 낮추는 일이기도 하다. 오픈마켓은 게임위와 MOU를 맺고 등급 분류를 대행할 수 있게 된 것이지 게임위에 준하는 심의 기관인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게임위의 이같은 주장은 게임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게임위 폐지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업계에서는 진작부터 게임위를 폐지하고 서비스사들이 게임물 등급분류를 자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왔다. 게임위 주장대로 애플과 구글 등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들이 게임위와 마찬가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굳이 게임위를 계속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1조의9(등급조정조치등) 항목(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1조의9(등급조정조치등) 항목(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사후관리 부실까지 스스로 인정한 게임위

게임위 반박보도자료 중 발췌
게임위 반박보도자료 중 발췌

게임위는 반박 보도자료를 통해 게임위의 등급분류 게임물에 대한 사후관리가 부실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냈다.

게임위는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이 내려진 '큐라레'와 유사한 노출 콘텐츠가 삽입된 '데스티니차일드'에 대해 지난 5월 민원 신고를 통해 모니터링을 실시했고 등급분류 적정성 여부를 검토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게임에 대한 등급분류가 부적절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채 서비스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데스티니차일드'는 오픈마켓 매출 1위를 기록하기까지 했던 게임임에도 4개월 이상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게임위 사후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게 한다.

이같은 사례는 '데스티니차일드'가 처음은 아니다. 다수의 성인용 모바일게임이 게임위의 사후관리 허점을 이용해 근 7개월간 12세이용가로 서비스를 진행해온 전례가 있다. 중국에서 개발된 모바일게임 '천검: PK레전드'는 지난해 게임위로부터 폭력 표현과 사행행위 모사를 이유로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최근까지 애플 앱스토어에서 12세 이용가로 서비스를 진행해왔다.

유료 재화 사용 거래소 콘텐츠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리니지M'과 '리니지2: 레볼루션'은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두 게임과 마찬가지로 유료 재화 거래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2세이용가로 서비스된 게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업계 파문이 일기도 했다.

게임위의 등급분류 게임물에 대한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부 게임업체들은 보다 낮은 이용등급으로 게임을 서비스하며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고, 등급분류에 맞게 게임을 출시하는 업체들은 간접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모호한 세부 심의 기준과 수정 요구 사항

게임물 등급분류 규정 제8조(선정성기준)
게임물 등급분류 규정 제8조(선정성기준)

게임위는 데일리게임 기자석의 '심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해 반박 보도자료를 통해 "구체적인 세부 심의 기준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게임위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된 15세이용가 게임물 등급분류 기준을 살펴보면 구체적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문구가 적지 않다. 게임물 등급분류 규정 제8조(선정성기준) 3항 15세이용가 항목에는 '선정적 내용이 있지만, 간접적이고 제한된 경우'라고 표기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직접적이고 어디부터가 간접적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에 이를 구체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해당 항목의 하위 항목 내용을 살펴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해당 가. 항목을 보면 '선정적인 신체노출이 있지만 간접적이고 제한된 경우'라고 표기돼 있다. 이 역시 문구만으로 어느 정도 수위까지 15세이용가 게임에 적합한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가슴, 둔부 등의 신체부위가 부분적으로만 표현됨'이라는 부연 설명은 앞선 항목보다 명확한 것처럼 보이지만 '부분적'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명확한 기준이 되기는 어렵다.

게임위는 반박 보도자료를 통해 '큐라레' 개발사 관계자와의 면담을 통해 결정 사유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했지만 본지 취재 결과 한 줄 짜리 문서를 통보한 것이 전부다. 해당 업체는 한 줄짜리 문서에서 등급재분류 결정 요인을 유추해야했고 일러스트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를 파악할 수 없어 재심의를 두 번이나 시도한 끝에 결국 모든 노출 부위를 검게 칠하는 것으로 심의를 통과하기에 이르렀다.

◆심의 데이터 공개 및 표본화 통해 투명성 확보 가능해

법조계 구성원들은 사건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 유사한 사건의 판례를 통해 해당 사건의 소송 흐름과 결과를 예측한다. 판례를 통해 사건의 판결을 미리 짐작할 수 있어 판결 과정에 대한 준비와 맺음이 원활해지며, 해당 사건의 예방을 막는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이렇듯 사건의 데이터, 표본화는 산업의 원활한 발전을 위해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게임위는 등급분류 의사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게임위는 최근 언론의 정보공개청구 요청도 거부하는 등 회의록 공개에 소극적이다. 어떤 과정으로 등급 상향 요소가 있다고 판단해 재분류를 통보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해당 업체와 면담해 결정 사유를 설명하는지 다른 업체의 입장에선 전혀 알 수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경우 회의록을 공개해 해당 방송물의 심의 과정과 관련 업체 통보 및 시정 과정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심의위원회를 통해 시정된 여러 경우들이 공개돼 다른 업체가 의도치 않은 심의 위반으로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 업계는 심의 사유의 공유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법안 해석이 힘든 경우 유사한 사례가 피해 예방의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게임위는 심의 결과만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심의를 받는 업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대외비가 포함돼 모든 회의 과정에 대한 공개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단순 일러스트에 대한 심의 기준 등 대외비가 아닌 부분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이런 논란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명숙 게임위 위원장은 게임위 공식 홈페이지 인사말을 통해 "심의와 관리서비스에 관하여 게임관계자 여러분의 의견을 담아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공공성을 유지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창의적인 공공서비스가 되도록 새로운 방향을 찾는데 힘을 기울이고 실천해 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여명숙 위원장의 말처럼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게임위 등급분류 체계가 확립됐다면 '고무줄 심의' 보도는 애초에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문제 상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보다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지금의 게임위에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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