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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리퍼 25화

메탈리퍼 25화
[데일리게임]

그런데다가 미하일의 심정을 모르는 중앙군의 대위는 다짜고짜 명령조로 그에게 지시를 내리더니 일행과 멀리 떨어져 경계근무를 서라고 했다.

최악이었다. 귀여운 이자벨 그리고 약간 어울리지는 않지만 나름 정감 가는 세 녀석과 맛난 것을 먹으며 시시덕거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이미 환상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자신이 지금까지 본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예리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조차 잃게 되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오후 내내 들판에서 경계근무만 서야 된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밀려왔다. 물론 예리엘이 틈틈이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했지만 중앙군 대위의 쏟아지는 눈치에 먹는 둥 마는 둥 하겠구나 싶어 아예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칼레 위원장의 경호업무를 맡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때늦은 후회일 뿐 저 멀리 수도향 고속도로를 듬성듬성 지나가는 차량의 수나 심심풀이로 세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휴일에다 워낙 교통량이 적은 도로다 보니 지나가는 차를 세는 심심풀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딘 일행은 뭐가 그리 좋은지 희희낙락 시끄럽기가 그지없다. 지루하고 따분해진 미하일 중위는 긴 하품을 한 번 하고 나서는 허리에 찬 권총을 매만졌다. 묵직한 느낌의 콜트45가 손끝에 만져졌다.

콜트45는 현재부터 적어도 만들어진 지 130년은 되는 총이다. 하바로프의 경비대원은 대부분 자신의 무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자율성을 살렸다기보다는 제식총기를 정할 만큼 수요도 공급도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하일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쓰던 총을 그대로 물려받아 쓰는 형편이었다.

대재앙 이후 여러 첨단 무기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다시금 화약병기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2020년 이후 실용화된 여러 빔 병기와 펄스 건과 같은 새로운 병기들이 등장했지만 대재앙과 더불어 발생한 플레이그 스톰과 같은 여러 지구의 환경변화로 완전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간단하고 변화된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화약병기인 총기의 사용은 필연적이었다.

더욱이 튼튼하게 지어진 박물관과 군사기지에서 보관되어 있는 총기들은 대재앙 이후에도 대부분이 큰 손상을 입지 않고 그대로 보관되어 총기의 필요 수요를 무리 없이 충족시켰다.

최근 들어서는 총기회사인 드래군 인더스트리가 다양한 총기들의 레플리카를 대량으로 판매하면서부터 총기의 공급은 한층 원활해졌다. 단지 드래군 인더스트리가 루체 왕국에 위치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미하일 중위는 나름 총의 묵직한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이 총은 다른 사람들처럼 보급받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할아버지 때부터 계속 써 왔던 가보와도 같은 물건이었다. 게다가 이 총은 자신이 흠모하는 사람의 손길이 가득한 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14 소총을 들고 있는 중앙군들을 보니 왠지 자신의 콜트45 권총이 초라해 보였다. 좀 더 여력이 되면 더 멋있는 총을 하나 더 들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미하일 중위는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 * *

아이딘과 일행들은 이런저런 얘기와 놀이를 하면서 신이 났다. 특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아이가 정말 아픈 아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자벨은 활기가 넘쳤다. 덩달아 어린 미쉘도, 예리엘도 이자벨과 죽이 맞아 즐겁게 어울렸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모두가 모처럼 보내는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단지 험상궂은 두 덩치의 합석에 이자벨이 특유의 경계심과 쌀쌀맞음을 보이긴 했지만 그리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딘은 이렇게 모두가 한마음으로 어우러져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이 마냥 좋을 뿐이다. 얼마 전부터 과거를 찾았으면 하는 생각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냥 이 현재의 즐거운 시간들이 지속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모처럼의 평안한 시간 속에 아이딘은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덧 즐거운 시간을 접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자벨과 미쉘이 더 놀고 싶다고 떼를 부려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더 흐른 뒤였다. 루드 의원이 칼레 위원과의 약속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6시까지는 꼭 돌아오기를 부탁했는데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약속시간에 못 맞출 것만 같았다.

지금 출발해야 가까스로 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딘의 마음이 급해졌다. 다행히도 많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음식들은 예리엘과 두 덩치가 쉼도 없이 먹어 치워 막상 떠나려니 크게 정리할 짐도 없었다. 그때였다.

탕! 탕!

총소리가 초원을 흔들었다.

가장 먼저 이상한 징조를 느낀 것은 미하일 중위였다. 그가 시선을 두고 있던 수도향 고속도로 저편에서 갑자기 폭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딘 일행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미하일 중위는 가슴에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악!”

“으악!”

연이은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중앙군 경호원들마저 하나둘 쓰러진다. 총성과 비명소리에 이자벨과 미쉘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른다. 비명소리에 반응하여 총알이 한층 거세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응사하던 중앙군의 대위마저 오른쪽 어깨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진다.

숲에 있는 나무 저편으로 몇몇 군인들이 얼핏 보였다. 군복으로 봐서는 중앙군의 것과 동일한 형태였다. 그들이 또다시 아이딘 일행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한다. 공포에 질린 이자벨과 예리엘이 연이어 비명을 지르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너무나 놀라 피하지도 못한 채 연신 겁에 질린 비명만 질러 댄다. 이대로라면 총알에 맞을 게 분명했다.

아이딘이 본능적으로 빠르게 몸을 움직인다. 가까스로 아이딘이 예리엘을 안고 총알을 피해 바닥을 뒹군다. 이자벨이 걱정되어 바라보니 다행히도 잭슨이 추스르고 있었다.

“예리엘, 괜찮아?”

“네, 저는. 이자벨은요?”

“어, 저기 잭슨이…….”

잭슨이 정신을 잃은 이자벨을 꼭 끌어안고는 나무 뒤편으로 엉거주춤 숨고 있었다. 위험천만한 고비를 간신히 넘겼다

“이건 무슨 일이지?”

호퍼가 바닥에 몸을 찰싹 붙인 채 아이딘에게 기어온다. 아이딘은 찬찬히 주변을 살펴본다. 중앙군의 대위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고 두 명은 즉사한 듯 꼼짝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한 명 또한 은신한 채 간헐적으로 적들을 향해 응사할 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다.

미하일 중위 역시 벌판에 널브러져 있고 나머지 경비대 한 명은 경비대 특유의 발 빠름으로 이미 타고 온 차 뒤편에서 은신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아이딘이 파악한 적들은 얼추 대여섯 명. 상황을 봐서는 처음부터 아이딘 일행을 목표로 삼은 것은 아닌 듯싶다. 군인들에게만 직접 사격을 한 걸로 봐서는 말이다.

서로가 대치한 상태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움직임은 상대 쪽이 먼저였다.

적 한 명이 숲을 벗어나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등에 무거운 것을 짊어졌는지 움직임이 꽤나 둔하다. 나머지 적들은 뛰는 적을 엄호하듯이 나무 뒤에서 간헐적으로 권총을 쏘는 중앙군에게 쉬지 않고 총알을 날렸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다. 아이딘은 주변에 떨어진 돌 하나를 달려가는 적을 향해 빠르게 날렸다.

쉬이익. 퍽!

개구리가 돌팔매에 뻗듯이 달리던 적군이 그대로 자리에 엎어졌다. 상황을 파악한 적병 한 명이 총구를 아이딘 쪽으로 돌렸다. 아이딘은 공중제비를 하면서 또 하나의 돌을 날렸다. 총을 쏘던 적 역시 쉬익, 퍽 하는 소리와 동시에 총성을 멈추었다.

계산대로라면 적은 이제 네 명 남았다.

나머지 넷은 상황을 파악하고 몸을 최대한 은신했다. 아이딘이 몇 개의 돌을 더 날려 봤지만 적을 맞추기에는 쉽지 않았다. 얼떨결에 당한 앞서의 적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비까지 하고 총까지 쏘아 대는데 아이딘으로서도 한계가 있었다. 거리도 거리였지만 아이딘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몇 번의 돌팔매가 실패하자 아이딘은 바닥에 찰싹 엎드려 눈치를 살폈다. 약간의 시간이 또 흐르자 또 한 명의 적이 짐을 짊어졌던 맨 처음 쓰러진 적을 향해 달려간다. 상황을 파악하고 권총으로 응사하는 중앙군을 피해서 가까스로 맨 처음 쓰러진 적 옆에 다다랐다. 그러더니 어깨에 짊어진 백을 벗겨서 등에 짊어지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움직임이 무거워진다. 그 틈을 노려 아이딘이 또 돌을 날린다. 여지없이 또 하나의 적이 쓰러진다.

이제 남은 것은 세 녀석. 적들은 아이딘의 돌팔매가 거의 총에 버금가는 위력이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은폐물인 바위 뒤에 착 달라붙어 꼼짝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앞서 쓰러진 적들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쉬지 않고 총을 쏘아 대는 바람에 아이딘도 머리조차 들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검은 물체 하나가 날아왔다. 수류탄이었다. 수류탄은 포물선을 그리며 중앙군 한 명이 은신한 곳으로 떨어졌다. 비명소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살아 있던 중앙군이 폭발에 휩싸였다. 두 번째 수류탄의 목표는 아이딘이었다. 아이딘은 재빨리 몸을 날려 가까스로 폭발을 피했다. 아슬아슬했다.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된 적들은 또다시 수류탄을 던지려 했다.

“이런.”

아이딘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나왔다. 수류탄을 던지려는 적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잭슨과 이자벨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전핀을 뽑은 적의 모습이 들어오는 순간 아차 싶었다. 몸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날아오는 총알의 파열음이 날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딘은 몸을 일으켜 자신을 향한 총구를 향해 돌을 날렸다. 총을 쏘는 적 하나가 또 쓰러졌지만 잭슨과 이자벨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려는 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수류탄을 든 사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와 더불어 수류탄이 터지면서 남아 있던 적들 모두가 폭발에 휩싸였다. 그리고 더 이상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딘 일행을 갑자기 공격한 다섯 명의 적들이 모두 쓰러졌다. 이제 한 녀석 만이 남았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교전에는 크게 참여하지도 못한 녀석이다.

돌연 녀석이 숲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좀 전에 무거운 백을 진 녀석처럼 이 녀석의 움직임도 무겁다. 아이딘은 쫓아가야 할까 잠깐 생각했지만 그럴 여유까지는 없었다. 어서 빨리 여기를 벗어나는 게 더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아이딘이 서서히 일어섰다. 수풀 저편에서 미하일 중위가 가슴을 만지며 걸어온다. 마지막 녀석은 그의 작품이었다.

“미하일 중위님.”

아이딘이 미하일을 괜찮으냐는 듯 부른다.

“어. 어.”

미하일은 아직도 어리둥절한가 보다. 이런 상황도 그렇지만 그것보다 처음으로 사람을 쏘아 죽였다는 사실이 더 그를 혼란스럽게 하는 듯싶었다.

“내가 그런 건가?”

미하일은 수류탄에 온몸이 찢긴 적들을 바라보며 약간은 넋이 빠진 모습이다.

“미하일 중위님, 괜찮아요?”

아이딘이 미하일 중위에게 다가선다. 미하일은 권총을 무릎에 댄 채 허리를 숙여 심호흡을 계속한다. 어지간히 정신이 빠진 모습이다.

“괜찮겠어요?”

아이딘이 미하일 중위의 어깨에 손을 대고 진정시킨다.

“어. 괜찮아.”

미하일 중위는 그제야 허리를 펴고 고개를 숙여 총알을 맞은 자신의 가슴을 살펴본다. 총알에 맞아 깊게 홈이 파인 흉장이 보였다. 이 멋있는 하바로프의 세련된 디자인이 미하일 중위를 살린 것이다.

호퍼와 예리엘도 주변 상황을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자벨을 안은 잭슨만이 바위 옆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잭슨!”

“잭슨! 괜찮은 거야?”

아이딘이 걱정하며 물었다. 잭슨의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자벨을 향하던 총알을 잭슨이 대신 맞았기 때문이다.

“정말 괜찮은 거야?”

“어. 괜찮아.”

잭슨이 울먹이듯 말하며 이자벨을 안고 일어선다. 마치 흠집 하나라도 내면 안 될 것 같은 보석단지를 안은 것처럼 조심스런 동작이다.

“이제 이자벨은 좀 놓아주지 그래.”

“어…… 어.”

그제야 잭슨은 정신을 잃고 안겨 있던 이자벨을 예리엘에게 넘겨준다. 그제야 멀찌감치 차 뒤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경비대원이 부리나케 달려와 주변을 정리한다. 다섯 명의 적들은 모두 죽었고 중앙군 경호원들 또한 대위 말고는 세 명 모두 목숨이 끊어졌다.

“이 사람들은 뭐지?”

“어라. 이 군인은 중앙군들하고 군복이 똑같은데?”

“뭐야, 이 녀석들은?”

“그 녀석들은 반란군이다.”

어깨에 총상을 입은 중앙군 대위가 호퍼에게 지혈을 받으며 힘들게 말했다.

“반란군?”

미하일 중위와 아이딘이 깜짝 놀란다.

군복의 문양을 보니 닉스 중앙군의 부대 마크와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었다. 닉스 연방군의 부대 마크는 검정색 바탕에 노란색 독수리가 그려져 있는 반면에 이들의 부대 마크는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 독수리가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두 명은 하바로프 연방군의 군복이었다.

“무슨 반란군이지?”

아이딘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미하일 중위를 빤히 쳐다본다. 미하일 중위 역시 알 턱이 없었다. 닉스 반란군의 현황이 아직 이곳 하바로프까지는 전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이, 중위. 어서 빨리 이 사실을 상부에 알려야 한다. 나 좀 부축해 줘.”

미하일 중위가 못마땅한 듯 대위를 부축한다.

“아아. 살살 좀…….”

“엄살이 심하신데요. 저 녀석이 더 심한 거 같은데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미하일이 눈짓으로 어깨를 피로 흠뻑 적시고도 멀뚱멀뚱 서 있는 잭슨을 가리킨다.

이때 이리저리 바쁘게 상황을 정리하던 호퍼가 물건 하나를 들고 와서 아이딘과 미하일 중위 앞에 휙 하고 던져 놓는다.

강성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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