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이 제정된 것은 약 20년 전인 2006년이다. 하지만 게임산업을 위해 제정된 듯한 명칭의 게임법은 그 이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법 이름은 '진흥법'이지만, 실상은 규제 중심으로 짜여졌기 때문이다. 특히 법의 성격과 범위를 정의하는 게임법의 제2조(정의) 조항마저 규제로 분류돼 있다. 여러 콘텐츠 관련 진흥법 중에서 법의 성격 자체가 규제로 분류된 건 게임법이 유일할 정도다.


게임법은 시작부터 높은 규제 비중으로 출발했다. 법의 목적을 규정한 제1조와 절차·형벌 규정을 다루는 보칙과 벌칙을 제외한 38개 조항 중 14개 조항이 규제 관련 조항으로 규제 조항 비율이 약 36.8%에 달했다. 게임법이 제정된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게임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법에 반영된 것.
게임법 제정 이후 19년 동안 여러 차례 법이 개정됐음에도 게임법은 여전히 규제 비중이 높다. 현행 게임법은 여전히 법의 목적을 규정한 제1조와 절차·형벌 규정을 다루는 보칙과 벌칙을 제외한 55개 조항 중 19개가 규제 조항으로 규제 비중이 약 34.5%에 달한다.
시행규칙에 이르면 그 정도는 더 심각하다. 총 38개 조항 중 무려 18개가 규제 관련 조항이다. 비율로 따지면 약 47.3%로 절반에 육박한다. 게임법은 이름만 '진흥법'일 뿐, 정작 산업 발전을 돕는 내용은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임업계가 오랫동안 게임법에 대해 '규제를 위한 법'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낸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타 콘텐츠산업 진흥법과 비교시 현저히 높은 게임법 규제 비중
비슷한 문화 콘텐츠 산업의 진흥법들과 비교해보면 게임법의 왜곡된 구조는 더욱 선명해진다. 2012년 만들어진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은 규제 조항이 아예 없다. '창작자 보호'라는 본래 목적에 충실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2020년 제정된 '애니메이션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도 17개 조항 중 규제는 단 1개, 비율로는 고작 5.9%에 불과하다. 이는 진흥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올바른 형태이며, 규제 일변도의 ‘게임법’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006년 제정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규제 비중이 그나마 높은 편이지만 그래도 게임법보다는 규제 비중이 훨씬 낮다. 영화법의 경우 총칙·보칙·벌칙을 제외한 113개 조항 중 31개가 규제 조항으로 규제 비율은 약 27.4%다.
◆ 제자리 걸음 뿐인 진흥책, 중장기계획도 미흡

게임법에서 진흥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조항은 제4조부터 제11조까지다. 이 조항들에는 신설조항이 추가되기는커녕 개정조차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제4조(창업 등의 활성화)는 2011년 12월31일에 신설된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10년도 넘는 시간 동안 창업 환경 변화나 플랫폼 변화에 대한 반영이 전무하다. 이 조항이 현재 게임 창업 생태계를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나마 변화가 있었던 조항은 제5조(전문인력의 양성)이다. 지난해 8월8일, 대통령령으로 대학·연구기관·전문기관을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개정됐지만, 이는 콘텐츠 산업 전반의 진흥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 조항일 뿐이다.
◆'복붙' 수준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게임 제작 지원 예산은 해마다 줄어
근본적인 문제는 굳이 게임이 아니어도 가능한 내용들이라는 점이다. 콘텐츠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진흥법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 조항에 불과하다. 개정된 내용도 진흥을 위한 큰 틀의 변화를 주기 보다 법률 용어나 관련 법 개정에 따른 타법개정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게임법에 근거해 작성되는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도 지난 2020-2024년 계획과 2024-2028년 계획을 비교해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그나마 추가된 내용이 콘솔 게임 진흥인데, 이마저도 표현만 달라졌을 뿐이다. 실제로 기존 지원사업 공고를 살펴보면 콘솔 게임을 타깃한 사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발표하는 '게임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총 예산은 지난 2023년 232억 원에서 2024년 221억 원, 올해는 192억 원으로 해마다 감소 추세를 보여 진흥에 대한 의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결국 게임법 제3조 제2항에 따른 진흥계획 수립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만 강조된 셈이다.


미국은 게임 산업 진흥은 주 정부 주도로 진행되며, 규제는 민간의 자율에 맡긴다. ESRB 등급제가 대표적인 자율규제 사례다. 연방정부는 규제에 개입하지 않고, 지방정부는 게임 기업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과 인프라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주는 2022년 발표했던 '세액환급 프로그램'으로 최대 25~35%에 해당하는 세금을 공제했다.
일본 역시 콘텐츠 산업 전반을 지원하는 법률 안에 게임이 포함돼 있다. 특히 '쿨재팬 전략'을 통해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 전통 콘텐츠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활발하다. 규제는 민간 자율에 가깝다. '컴플리트 가챠' 논란 당시에도 정부가 아닌 일본온라인게임협회(JOGA)가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현재도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 속한 국가도 규제와 진흥을 별도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크리에이티브 유럽 프로그램을 통해 게임을 포함한 문화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7년에 걸쳐 총 24억4000만 유로(한화 약 3조6728억 원)의 막대한 지원금이 책정됐으며, 게임 관련 프로젝트에만 600만 유로(한화 약 90억 원)가 배당됐다. 프로젝트 당 최대 20만 유로(한화 약 3억)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약 30~50개 게임 개발사에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규제 역시 PEGI 등급제 중심으로 민간 자율에 맡기고 있다. 개별 국가 차원의 규제가 일부 존재하긴 하지만, 한국처럼 강제적 규제 위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규제 패러다임 벗어야 '진흥법' 이름값 가능
게임법 '제1조(목적)'은 '게임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게임물의 이용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 게임산업의 진흥 및 국민의 건전한 게임문화를 확립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과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지난 18년 간 규제 일변도의 패러다임에 갇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게임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독소조항이 법령 곳곳에 스며 있다. 목적에 걸맞은 법이 되려면, 이 규제 중심 패러다임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게임법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지만, 전환의 기점은 분명히 있다. 현 정부는 사후관리 중심 체계 전환, 민간 자율심의 도입 등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대선 전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이하 게임특위)는 게임 분야 거버넌스 개편을 언급하며 변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는 진흥을 위한 체계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본격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게임이 진흥법으로 거듭날 수 있는 중요한 국면이 도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진흥 정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산업계의 적극적 참여와 협력이 전제돼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업계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요구안을 제시하고, 정부는 이를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뒷받침해 게임법 본연의 가치를 되찾아야 할 때다.
서삼광 기자 (seosk@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