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의 이 발언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 게임 산업을 지탱해 온 수익 구조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짚었다. 대통령은 최근 정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확률형 아이템 정보 조작 및 미공개 사례를 언급하며, 단순한 시정 조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부당 이익 환수와 징벌적 수준의 과징금 부과 등 실질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이어진 한국 게임 산업의 변화 흐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때 국내 게임사의 성장을 이끌었던 '확률형 아이템' 중심 구조는 규제 환경의 변화, 사법부의 판단, 그리고 이용자 인식 변화와 맞물리며 본격적인 전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를 단기적 위기라기보다, 장기적 체질 개선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변화의 출발점은 '투명성'과 '고지 책임'에 대한 제도적 판단이었다. 게임사들이 관행처럼 운영해 온 확률 구조가 법과 제도의 테이블 위에 오르며, 누적돼 온 이용자 불신이 공식적인 제재와 판결로 이어졌다.
2025년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웹젠에 부과한 과징금은 이러한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정위 조사 결과, '뮤 아크엔젤'에서는 특정 시도 횟수(최대 149회) 이전까지 아이템 획득 확률이 사실상 0%인 구간이 존재했음에도, 이용자에게는 0.25%의 확률이 있는 것처럼 안내됐다. 공정위는 이를 소비자 오인을 유발하는 행위로 판단해 시정 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사례는 사법적 기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대법원은 2024년 11월, 확률 구조를 이용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고도 이를 알리지 않은 행위에 대해 단순 과실이 아닌 '적극적 기망'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확률형 아이템 운영 과정에서 정보 비공개가 어떤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한 판결로 평가된다.
제도 환경도 빠르게 정비되고 있다. 2024년 3월 확률 정보 공개 의무화가 시행된 데 이어, 2025년 9월에는 이른바 '컴플리트 가챠(이중 뽑기)' 방식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법안이 다시 발의됐다.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일부 게임의 핵심 수익 구조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용자 인식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메이플스토리'는 확률 논란 이후 2024년 한 해 동안 활성 이용자 수가 약 40%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용자들은 단순 항의나 트럭 시위를 넘어, 집단 소송과 법적 대응을 통해 권리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주요 게임사들의 실적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엔씨소프트는 모바일 게임 매출 감소의 직격탄을 맞았다. 2025년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했고, 영업손실 75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엔씨타워 매각을 통해 당기순이익은 흑자를 유지했지만, 본업인 게임 사업의 성장성 둔화는 뼈아픈 과제로 남았다.
넥슨 역시 글로벌 포트폴리오와 환율 효과에 힘입어 같은 기간 순이익이 증가했음에도 영업이익은 약 27% 감소해, 기존 라이브 게임 중심 매출 구조의 한계 역시 함께 드러냈다는 평가다.
◆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시장도 '확률'에 제동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변화는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게임 시장 역시 루트박스(Loot Box)를 둘러싼 규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해외 매체 게임인더스트리의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은 2026년부터 18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루트박스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도입하기로 했으며, 호주는 확률형 또는 도박 유사 요소가 포함된 게임에 대해 연령 등급을 상향 조정하며 청소년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역시 자율 규제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법제화 가능성을 놓고 논의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게임인더스트리는 "2025년을 기점으로 확률 기반 수익 모델이 더 이상 회색지대에 머물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라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에서 진행 중인 공정위 제재와 사법 판단이 국제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 '아이온2'가 보여준 변화… 매주 이어지는 '신뢰의 소통'
이러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엔씨소프트의 '아이온2'는 가장 눈에 띄는 대응을 보여준다.
'아이온2'는 서비스 초반부터 매주 정기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이용자들과 실시간으로 호흡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방송의 내용이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용자들이 지적하는 불합리한 성장 구조를 즉각 인정하고, 이를 '확률'이 아닌 '확정적 노력'의 영역으로 옮기는 과정을 매주 투명하게 공유하고 있다.
특히 성장과 직결된 핵심 장비나 스킬 습득 과정에서 확률형 뽑기 모델을 완전히 배제하고, 이를 오직 인게임 플레이와 확정 제작의 영역으로 돌려놓았다. 확률은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는 '꾸미기'와 '수집용 외형' 등에만 한정적으로 적용해, 성장의 즐거움은 보장하되 과금의 피로도는 낮추는 새로운 공식을 선보인 것.
이는 "돈을 써서 확률을 뚫어야 강해진다"는 기존 문법을 "노력한 만큼 공정하게 보상받는다"는 룰로 대체하며, 무너진 MMORPG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실질적인 실험에 나선 셈이다.
◆ 이용자가 원하는 것은 '무료'가 아닌 '공정한 룰'
그동안 업계 일각에서는 이용자들이 과금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확률형 아이템 뒤에 숨어 수익을 보전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시장 흐름은 이용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공짜 게임'이 아니라, 내가 들인 시간과 비용이 배신당하지 않는 '공정한 룰'임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과거 온라인 게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정액제' 모델이 다시금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소수의 '고래 이용자'에게 고액을 뽑아내는 구조 대신, 모든 이용자가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평등한 출발선에서 경쟁하는 정액제는 가장 명확하고 투명한 '게임 이용 계약'이기 때문이다.
확률의 불투명성에 지친 이용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환경은 오히려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 전환기의 한국 게임 산업… '확률 이후'를 준비하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보인 '확률형 아이템의 투명화' 작업이 단순한 일회성 단속이나 과징금 부과라는 '용두사미'로 끝나서는 안 된다. 2025년 현재, 한국 게임 산업은 규제가 무서워 변화하는 흉내를 내는 단계에서 나아가,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확률'에서 '공정'으로 완전히 재편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제는 규제를 넘어 이 공정한 룰을 시스템으로 박제해야 할 때다. 정부는 징벌적 제재와 더불어 공정한 수익 모델(BM)을 채택한 기업에 대한 장려책을 고민해야 하며, 기업들은 매주 라이브 방송을 켜는 정성만큼이나 게임 시스템 깊숙이 박힌 불공정한 확률의 잔재를 완전히 걷어내는 결단을 보여야 한다.
결국 K-게임의 재도약은 화려한 그래픽이나 플랫폼의 확장이 아닌, “이 게임은 최소한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이용자들의 확신에서 시작될 것이다. '확률'이라는 요행의 시대를 끝내고 '공정'이라는 상식의 시대를 여는 것, 그것이 한국 게임 산업이 함께 풀어가야 할 다음 장이다.
김형근 기자 (noarose@dailygam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