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게 한국의 PC방은 경이로운 공간이다. 전 세계 게이머가 선망하지만 국내 미디어에선 PC방이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일이 드물다(사진=엠넷 '아이즈원츄 – 환상캠퍼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254908681da2c546b3a1235116101.jpg&nmt=26)
외국을 나가보면 김치만큼 그리워지는 게 한국의 PC방입니다. 한 번은 유럽에 가서 컴퓨터를 쓸 일이 생겼습니다. PC 카페가 어디 있다는데 찾기도 어렵고, 막상 들어가 보니 몇 대 안되는 PC를 놓은 구멍가게 수준이었습니다. 속도는 지지부진한데 가격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더군요. 괜히 위키피디아에 'PC방(PC BANG)'이 고유명사로 등록된 게 아니겠죠.
PC방은 분명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관광 책자에도 한국에 들르면 꼭 가봐야 할 곳 중에 경복궁 못지 않게 자주 등장하는 곳이 PC방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인터넷이 더 빠르고, 게임을 더 잘 만드는 나라가 존재합니다. 국민 소득이 더 높은 나라도 있죠. 그렇지만 한국보다 더 나은 PC방이 있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자 카페에서 게임방으로, '스타크래프트'가 다했다
![휘황찬란한 한국의 PC방. 과거의 담배 전내 나는 음침한 공간을 상상하면 놀랄 수 있다(사진=제닉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273403359da2c546b3a1235116101.jpg&nmt=26)
1988년 홍익대학교 근처에 생긴 '일렉트로닉 카페(전자 카페)'가 PC방의 조상격이라고 합니다. 카페가 메인이고, PC는 손님에게 제공되던 부가서비스에 불과했죠. 사이버 카페, 모뎀 카페 등 PC통신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들이 조금씩 생겼고, 1996년이 돼서야 월드와이드웹(WWW) 기반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가 나왔습니다.
PC방의 원년은 1998년입니다. 역사적인 두 개의 사건이 있던 해죠. IMF가 터졌고 '스타크래프트'가 나왔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블리자드도 IMF 구제신청을 신청한 동방의 나라에서 수백만 장을 팔아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281309140da2c546b3a1235116101.jpg&nmt=26)
![방과 후 PC방으로 달려가는 초글링(사진=OGN).](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285600326da2c546b3a1235116101.jpg&nmt=26)
![당시 PC방 이름은 스타류와 MMORPG로 양분돼 있었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292804450da2c546b3a1235116101.jpg&nmt=26)
당시 김대중 정부는 IMF를 극복하기 위해 2002년까지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깐다는 '사이버코리아21'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이 계획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PC방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때 만들어 놓은 IT 인프라는 온라인게임의 동맥이 됐습니다.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내야하던 PC통신의 종량제 대신 한 달 요금을 정한 정액제를 정부가 고수한 것도 PC방에겐 호재였습니다.
![전국 PC방 증감 추이(사진=한콘원 '2019 게임백서').](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300701629da2c546b3a1235116101.jpg&nmt=26)
◆코 묻은 돈이 PC방을 키웠다
![자욱한 담배연기, 불량학생들의 소굴. 2000년대 초반까지 PC방은 전 세대의 당구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사진=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311703508da2c546b3a1235116101.jpg&nmt=26)
PC방은 남학생들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놀이 문화이자 땡땡이, 즉 일탈의 공간입니다. 한 시간에 1000원에 맘껏 놀 수 있는 놀이터가 PC방 말고 또 어디가 있겠습니까. 당구장과 오락실의 유구한 전통을 PC방이 이어받았죠.
집에 PC가 있다곤 하나 엄마의 눈초리 때문에 장시간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은 못 됐습니다. 학교에서 학원, 도서관으로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에 PC방은 거의 유일한 탈출구가 돼 줬습니다. 성적 줄 세우기에서 패배한 학생들이 대리만족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학교라는 잔혹한 인정투쟁에 장에서 게임 고수라는 별명은 지금이나 예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RPM 120, 빨무 고수라는 별명이 플래티넘, 다이아몬드로 변했다 뿐이지 메커니즘 자체는 20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청소년들이 선불로 1000원, 2000원 내는 '코 묻은 돈'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성인이 퇴근하기 전 오후 3시부터 6시까지의 매출을 책임집니다. 주말이면 부모의 눈을 피해 삼삼오오 친구와 몰려가 세 시간쯤은 거뜬히 책임져주는 업계의 큰손입니다.
PC방이 그나마 잘 된다는 중국, 미성년자는 PC방에 출입할 수조차 없습니다. 왕년에 한국이 영화관을 청소년 유해시설로 지정했듯, 중국에선 학생이 PC방에 가면 징계를 받게 됩니다. PC 온라인게임보단 모바일게임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LA의 한 PC방. 한인이 밀집해 있는 코리안타운에 가야 해외에서 게임 좀 할만한 PC방을 찾을 수 있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320106596da2c546b3a1235116101.jpg&nmt=26)
![일본의 PC 카페. 3시간에 1만 원 정도 한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322902569da2c546b3a1235116101.jpg&nmt=26)
◆투쟁+관계=전투선비의 나라 한국
싸워서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특성도 한국 PC방을 세계 1위로 올려놓은 요소 중 하나입니다.
외국에선 PC방이 개최하는 e스포츠라는 개념을 찾기 어렵습니다. 서양의 PC 카페는 조용히 업무를 보다 떠나는 고독한 장소죠. 한국인에게 PC방은 전쟁터입니다. 매 판 고성과 욕설이 빗발치죠. 일본의 PC 카페에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게임 차트만 봐도 누군가와 싸우는 게임보단 스토리 위주의 개인적인 게임이 득세하는 나라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게임해야 즐거움이 배가되는 사회성도 한국 PC방의 특수성입니다. 같은 삼겹살이라도 집에서 먹을 때와 고깃집이 다르듯 PC방에서 친구와 게임을 할 때의 맛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밤새 라면을 먹으며 친구와 폐인짓을 하고 있노라면 묘한 전우애까지 싹트곤 하죠.
외신에선 이런 한국의 PC방 문화를 유교적 전통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개인주의가 자리 잡은 서양은 설령 온라인게임일지라도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에 머무른다고 합니다. 자신의 성취나 경험에 집중하는 경향을 띕니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권의 게임 문화는 사뭇 다르죠. 랜선 만남보다는 오프라인 만남이 살갑고 게임하는 맛이 진하죠. 개인플레이보다는 팀플레이를 선호하는 문화적 유전자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게임을 시작한다는 동기 자체가 서양권에서 익숙치 않다고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그래서 가장 세계적인 한국의 PC방
![이 정도 인기와 특색이면 PC방도 '국뽕'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김치 캐릭터 애니메이션 보다는 나은 듯하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410102791da2c546b3a1235116101.jpg&nmt=26)
땅덩어리가 좁았기에 산간벽지까지 촘촘히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부모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유부남들이 아내의 잔소리에서 도망쳐 PC방을 애용습니다. 이들의 수요를 믿고 별다른 기술 없이도 창업하길 원하는 정년퇴직자들이 전국에 PC방을 세웠습니다. 워낙에 PC방이 많다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생존을 위한 스펙업이 강요됐습니다. 옆 PC방보다 한 푼이라도 싸게, 조금이라도 성능이 좋은, 인테리어가 더 나은 PC방만 살아남는 생존 투쟁이 수십 년간 반복되다보니 그야말로 최강자들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초의 카페테리아형 PC방은 돈까스만 팔았다. 장족의 발전이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82517415001759da2c546b3a1235116101.jpg&nmt=26)
만약 한국이 콘솔게임 강국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미국과 일본이 그렇듯 게임은 집단보다는 개인의 색채가 더 강한 문화가 됐을 겁니다. 시작점이 달랐습니다. 미‧일의 게임이 혼자 있는 '방'에서 시작했다면 한국은 '왁자지껄한 PC방'부터 출발했습니다. 결핍과 단점 때문에 최강이 된 PC방이라니, 꽤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정리=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