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e-sports

[기자석] 게임이 마약 취급받는데, 산업협회는 왜 말이 없나

(제공=한국게임산업협회).
(제공=한국게임산업협회).
성남시가 'AI를 활용한 중독예방콘텐츠 제작 공모전'을 열며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했다. 게임을 직업으로 삼고, 게임으로 수출과 고용을 일으키며, 게임을 통해 도시 정체성을 만들어온 판교를 품은 성남시에서 나온 표현은 단순한 언어 실수가 아니다. 이는 정책적 시그널이자, 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왜곡을 강화하는 메시지다.

게임업계는 곧바로 반응했다. 카카오게임즈 전 대표인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은 성남시와 협력 중단 가능성을 거론하며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전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 국회 게임특위, 지방 정당까지도 우려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런데 정작 산업계 전체를 대표하는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는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논란이 공론화된 지 하루가 넘었는데, 성명도, 해명도, 유감 표명도 없었다. 산업이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침묵은 설명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국내 대형 게임사들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단체다. 넥슨, 엔씨소프트, 카카오게임즈 등 협회 부회장사 다수가 성남시 판교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이들이 매년 납부하는 지방세 규모만 해도 단일 도시 수준을 넘어선다. 이 정도 위상이라면, 성남시가 주최한 공모전 하나가 게임산업 전체를 낙인찍는 프레임을 만들었을 때 협회가 나서지 않는 건 '무대응'이 아니라 업무 태만이다.

더 심각한 건 타이밍이다. 게임산업협회는 얼마 전 신임 협회장을 새로 선출했고, 정책국장을 포함한 협회 실무진 인선도 개편됐다. 새로운 리더십이 출범한 상황에서 이 같은 사안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면,그 시작 자체가 존재감 없는 체제로 낙인찍힐 수 있다.

임기 초반은 신뢰를 만드는 시기다. 조직의 기조, 방향, 산업에 대한 태도를 외부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다. 그 시기에 산업이 왜곡된 시선에 노출되었는데도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협회의 역할은 존재론적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적 언어로 게임을 '중독물질'로 지정한 건 사소한 실수가 아니다. 산업의 정당성에 대한 공격이자, 사회적 낙인을 고착화할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다. 여기에 공식 반박을 하지 못한다면, 협회가 향후 어떤 정책적 위기에도 산업을 대변할 수 있으리라 믿을 이유가 사라진다.

만약 협회가 정치적 부담이나 대외 관계를 고려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명백한 판단 미스다. 지금은 부드러운 외교보다 강한 메시지가 필요한 순간이다.

'게임은 산업이다'를 내세운 협회라면, 산업이 왜곡당할 때 그 슬로건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도, 짧은 시간 안에 침묵이 만들어낼 후폭풍은 오래 남는다.

김형근 기자 (noarose@dailygame.co.kr)
<Copyright ⓒ Dailygame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데일리랭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