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르고의 시큰둥한 반응에 세실리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껏 그녀는 자신을 거부하는 경우를 그다지 경험해보지 못했다. 남달리 아름다운 그녀가 간곡한 어조로 부탁하면 인간 남자들은 혼이 빠진 듯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미모는 눈앞의 아만족에게는 전혀 어필하지 못했다. 애초에 미를 보는 관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정신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세실리아의 눈에 어지럽게 널린 시체들이 들어왔다. 그 옆에 내팽개쳐진 배낭에는 동료들로부터 노획한 전리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세실리아가 미련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카르고의 등에 대고 입을 열었다.
“전리품을 챙겨가지 않을 생각인가요?”
“난 전사지 도둑이 아니야”
“흠. 좋아요. 아만 전사님. 보아하니 제대로 된 장비도 없는데 어떻게 마련하실 생각이세요?”
그 말에 걸음을 멈춘 카르고가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실 아케니아 혈족의 전사들은 철저히 소비 집단이었다. 먹는 것에서부터 입는 것, 무기와 갑옷 등 모든 것을 일족의 일꾼들이 제공해주었다. 전사들이 하는 것이라곤 오로지 몸을 단련하는 것과 사냥, 적과 싸우는 것뿐이었다.
눈매를 좁힌 카르고의 귓전으로 세실리아의 가냘픈 음성이 계속 파고들었다.
“저는 마법사예요. 통역 마법을 쓰고 있기에 전사님과 대화가 가능한 것이에요. 아마 다른 사람들은 전사님과 대화가 불가능할 거예요. 전사님이 발렌시아드 연맹 공용어를 배우기 전까지 말이에요”

카르고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문제 역시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세실리아가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은화 몇 개를 꺼냈다. 노예 사냥꾼들이 다행히 그녀의 주머니는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돈은 있으세요? 레나르로 가서 여관에 투숙하고, 먹을 것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해요. 무기와 갑옷을 장만하는 데에는 더욱 많은 돈이 필요하죠”
그 말을 들은 카르고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완연한 곤혹스러움이 떠올라 있었다.
“먹고 자는 데 네 손에 있는 돈이란 물건이 필요한 것인가?”
그 말을 들은 세실리아는 마침내 눈앞의 덩치 큰 아만족 전사를 요리할 방법을 알아차렸다. 그는 싸움만 잘할 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당연하죠. 먹고 자는 것뿐만 아니라 뭘 하려면 반드시 돈이 있어야 해요. 저라면 죽은 자들의 장비와 배낭을 모두 가지고 갈 거예요. 가지고 가서 적절한 곳에다 팔면 돈으로 바꿀 수 있어요. 돈이 있다면 전사님의 몸에 맞는 갑옷과 무기를 구매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돈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
“흠, 제 말대로 하셔도 문제가 생기겠군요. 레나르에 아만족의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마법사 외에는 거의 없어요. 물건을 팔려고 해도 아마 상인은 전사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걸요? 마법사가 아니면 대화는 불가능해요”
카르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백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아케니아 혈족의 전사에게 세상은 너무도 복잡했다.
‘레나르로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더니’
입술을 살짝 깨문 카르고가 세실리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두 손을 꼭 모은 세실리아가 간절한 눈빛으로 카르고를 올려다보았다. 주저하던 카르고가 입을 열었다.
“널 레나르로 데려다 주면 날 도와줄 것인가?”
항복 선언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세실리아의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