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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전설] 액션 어드벤처 장르 교과서 '페르시아의왕자'

게임은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출발해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 콘텐츠로 확고히 자리 매김 했습니다. 게임은 문화 콘텐츠를 넘어 2010년 기준 한 해 60조 원이 오가는 문화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발전 과정은 수 많은 게임 제작사와 완성도와 작품성, 예술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데일리게임은 게임을 문화 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한 유명 게임 시리즈의 못다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액션 어드벤처의 교과서 '페르시아의왕자'
[게임의 전설] 액션 어드벤처 장르 교과서 '페르시아의왕자'


모험과 액션이 결합된 액션 어드벤처는 전자오락이 시작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입니다. 액션 어드벤처 장르는 비교적 개발이 쉽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레벨 디자인, 게임 형식을 적용한 여러 변종의 등장 등 게임 장르로서 인정받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액션 어드벤처 장르가 게이머와 업계의 인기 장르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1989년 등장한 '페르시아의왕자'입니다.

'페르시아의왕자'는 등장 초기 DOS 버전을 시작으로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명작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는데요. 미국 게임 잡지 PC게이밍월드는 게임의 교과서 10선을 선정하면서 '슈퍼마리오', '둠', '테트리스'와 함께 ‘페르시아의왕자’를 선정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페르시아의왕자'의 특징은 부드러운 움직임, 다양한 함정, 1시간으로 제한된 플레이 타임이었는데요. 이런 특징들은 당시 혁신적인 요소로 게이머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이런 요소들은 여러 액션 어드벤처가 차용해 사용하게 됩니다.

'페르시아의왕자'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다양한 데드신인데요. 1990년도 초반은 저장 장치가 발달하지 않아 디스켓으로 게임을 유통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다양한 데드신 사용은 게임의 집중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조던 매크너가 밝힌 '페르시아의왕자' 개발 과정
[게임의 전설] 액션 어드벤처 장르 교과서 '페르시아의왕자'

◇조던 매크너는 '페르시아의왕자' 영화 제작에 참해여 어린 시절 꿈을 이뤘다(사진출처:www.comicmix.com)


'페르시아의왕자'를 홀로 개발한 조던 매크너. '천재'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는 원래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청년이었습니다.

조던 매크너가 '페르시아의왕자'를 만들게 된 계기는 1979년 선물 받은 애플II였는데요. 1984년 그는 애플II로 당시 인기를 끈 격투 게임 '가라테카'에서 영감을 받아 본격적인 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됩니다.

조던 매크너는 '가라테카'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영화 '인디아나존스'를 보고 '페르시아의왕자' 기획 콘셉트를 잡게 되는데요.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는 그가 느꼇던 흥분과 재미를 게임에 넣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된 도전이었습니다.

조던 매크너는 게임의 기본적인 설정과 기획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가라테카'와 같은 부드러운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로코스코프' 기법을 '페르시아의왕자'에 사용할 결심을 합니다. '로코스코프' 기법은 고전 디지니 애니메이션에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기법으로, 현실에서 사물의 움직임을 촬영한 뒤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잘라 그림으로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이 기법을 사용하기 위해 조던 매크너는 자신의 움직임을 촬영하거나 형제들에게 액션을 취하게 한 뒤 움직임을 촬영하고 컷을 나누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작업은 '페르시아의왕자'에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으므로 꽤 오랜 준비기간을 필요로 했는데요. 조던 매크너가 밝힌 바에 따르면 첫 촬영을 하고 테스트 버전 애니메이션을 완성하기 까지 만으로 3개월을 소비 했다고 합니다.

[게임의 전설] 액션 어드벤처 장르 교과서 '페르시아의왕자'

◇가라테카(空手家, 공수가)의 부드러운 움직임 '페르시아의왕자' 개발에 영향을 줬다


이후 조던 매크너는 던전 디자인과 레벨 밸런싱 작업에 8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데요. 당시 '페르시아의왕자'는 브로드번드 소프트와 퍼블리셔 계약을 완료한 상태라 개발 일정에 쫓기게 됩니다.

게다가 조던 매크너는 평소 꿈꿔왔던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길이 열리게 돼 선택을 강요 받는 상황이었는데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조던 매크너가 시나리오 작업을 담당하던 영화가 무산돼, 게임 개발을 시작한지 2년 만인 1988년 8월 ‘페르시아의왕자’의 기본 틀이 완성됩니다.

그는 완성된 뼈대를 바탕으로 던전 디자인을 완성하고, 최종 테스트를 진행해 1989년 5월, 개발기간만 33개월에 달하는 '페르시아의왕자'를 세상에 내놓는데요. '페르시아의왕자'는 현재의 지명도나 인기와는 정반대로 초기 판매량 84장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이유는 '페르시아의왕자'가 낡은 플랫폼인 애플II로 발매됐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의와자'의 긴 제작기간 동안 빠르게 성장한 개인용 PC시장은 조던 매크너가 예상했던 것 보다 빨리 변해버렸습니다. 그가 사용하던 애플II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고, 일반 사용자는 IBM PC를 선택하게 된 것이지요.

이후 '페르시아의왕자'는 1990년 5월 IBM PC 버전이 발매되면서 이용자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맥킨토시 버전과 새로운 마케킹 적용, 퍼블리셔의 전폭적인 지지로 해외 진출에 성공하는 등 '페르시아의왕자'는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영원히 고통 받는 페르시아의 왕자 '카코 루키아'

[게임의 전설] 액션 어드벤처 장르 교과서 '페르시아의왕자'

◇2003년 '페르시아의왕자:시간의모래'로 시작된 3부작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후 '페르시아의왕자'는 PC 시장을 넘어 '메가드라이브'와 SFC 등 콘솔 게임기로 리메이크 될 때마다 명작에 반열에 오르며 꾸준한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기 뒤에는 페르시아의 왕자 '카코 루키아'의 고통과 비례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데요.

2003년 11월 유비소프타가 신작 '페르시아의왕자:시간의모래시계'를 출시하면서 알려진 주인공의 이름은 '카코 루키아' 입니다. '페르시아의 왕자'의 모든 시리즈를 요약하면 "영원히 고통받는 카코 루키아"로 압출할 수 있는데요. 시리즈 첫 편 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을 경험한 '카코 루키아'는 3D로 바뀐 배경 속에서도 꾸진히 고통 받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가 변한 만큼 극안한 난이도와 악랄한 함정은 적어져 물리적인 고통은 감소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스토리 라인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구성을 포함하게 된 '페르시아의왕자' 3부작에서 '카코 루키아'는 정식적인 고통을 감당해야 했는데요.

일반적인 게임에서 주인공은 영웅 이라는 공식을 벗어난 '카코 루키아'는 조국의 몰락, 지인의 죽음, 배신을 경험하면서 영원히 고통 받는 처지에 노이게 됩니다. 특히 이 3부작 시리즈는 각각 시간의 모래를 사용한 시간 되돌리기, 어둠의 왕자 시스템 등 그가 겪는 고통을 배로 만들기 위한 게임 속 장치가 사용돼 게이머를 안타깝게 했었습니다.

[데일리게임 서삼광 기자 seosk@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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