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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각성자, F급으로 회귀하다] 8화

[SSS급 각성자, F급으로 회귀하다] 8화
[데일리게임]
8. 다섯 악당 (2)

“앞으로 시체가 더 생길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김촌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외눈을 껴서 존의 인벤토리를 살폈다.

존의 인벤토리에는 약간의 돈뿐.

그에게는 몸에 걸친 넝마가 전부였다.

김촌상은 안심하며 외눈을 빼고는 옆에 늘어세운 맥주병들을 확인했다.

전부 빈병.

그는 입맛을 다시며 몸을 일으켰다.

“이봐, 존나. 난 잠시 마을에 다녀올 테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일을 끝마쳐 놔. 알았지?”

감시꾼이 없다는 것만으로 존의 얼굴은 한결 밝아졌다.

“어, 얼마나 걸리시는데요?”

“한 시간. 혹시라도 도망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 마을은 10층 황야의 변방.

마을 대표로 생필품을 사러 거주 구역으로 가는 사람을 제외하면 다른 곳과의 왕래는 극히 적었다.

결정적으로 가장 가까운 마을과는 사흘 이상의 거리였다.

물이나 식량 없이 무작정 도망쳐 봤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할 것이었다.

“에헴.”

김촌상은 공동묘지를 나와 마을로 들어섰다.

사실 이곳은 마을이라기보단 소규모 거주 집단, 딱 그 정도의 명칭이 알맞은 곳이었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마을 중심에 위치한 여관주점.

거기가 일당의 본거지였다.

1층 주점에는 마일과 일당에게 가담한 마을 주민 몇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일이 맥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시체 매장이 끝났어?”

마일은 눈웃음을 지으며 가늘게 뜬 눈꺼풀 아래로 김촌상을 쳐다봤다.

김촌상은 그 미소에 몸이 절로 위축돼서 자기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

“아니, 아직. 그냥 술이나 더 가져가려고.”

“그래? 그럼 어서 챙겨서 가 봐.”

주인과 하인.

마일은 주인답게 하인의 보고를 들은 후 뒤돌아서 앉았다.

김촌상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카운터 뒤에서 맥주병 몇 개를 꺼냈다.

손에서 느껴지는 미지근한 감촉.

마지막으로 시원한 맥주를 마셔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젠장.”

인벤토리에 맥주를 넣은 후 김촌상은 어깨가 아래로 쳐진 채 여관주점을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공동묘지로 돌아가며 마을을 살폈다.

몇몇 지나가는 주민들이 흘깃 그를 쳐다보며 일부러 피해 가거나, 몸서리를 치는 게 보였다.

강자를 두려워하는 약자의 당연한 모습.

김촌상은 방금 전 굴욕감을 떨쳐 내며 당당히 어깨를 폈다.

그리고 우쭐한 마음으로 우렁차게 헛기침을 했다.

“엣, 헴!”

그의 과도한 기침 소리에 주변 모두가 움찔거렸다.

그는 그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엔 코에서 재채기가 나오려 하자, 기합을 잔뜩 넣고 최대한 과장된 재채기를 했다.

“에이, 취!”

우렁찬 함성처럼 재채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귀를 막지도 못한 채 모두 그를 멀리하며 흩어졌다.

김촌상은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한 채 공동묘지로 돌아갔다.

그는 아까 앉아 있던 자리에 다시 엉덩이를 깔고 앉은 후 크게 소리쳐 존을 불렀다.

“이봐! 존나! 어디 있어?”

김촌상은 존이 대답을 하든, 말든 인벤토리에서 맥주병을 꺼내 옆에 늘어놓았다.

“빨리 안 나오면 대가리를 마총으로 쏜 다음에 네가 판 녀석하고 같이 묻어 버린다?”

역시 묵묵부답.

김촌상은 인벤토리에서 샷건을 꺼내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정말 여차하면 쏴 버릴 생각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저 멀리 가장 나중에 판 구덩이.

존이 몸을 숨길 만한 장소는 그 속뿐이었다.

왜 녀석이 멍청하게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하려는 걸까.

매장 작업이 거의 다 끝난 터라 죽여도 아쉬울 건 없었다.

김촌상은 그저 마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는 쾌감을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확인 들어가겠습니다. 따, 라라란, 따라란, 따라란, 따, 쿵짝짝, 쿵짝…….”

김촌상은 바로 옆에 있는 무덤 묘비에 한쪽 팔을 건 채 상체를 쓱 구부려 구덩이 안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속엔 아무도 없었다.

“뭐야? 그럼 어디로 간 거지?”

그때 김촌상이 기대고 있던 묘비가 쑥 빠지며 그의 몸이 구덩이 속으로 추락했다.

그는 ‘억!’하는 소리만 낼 뿐 무기력하게 구덩이로 쓰러져 몸이 180도로 뒤집혀졌다.

“젠장!”

김촌상은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다시 돌려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위에서 대량의 흙이 쏟아진 탓에 자꾸만 헛발질을 하면서 미끄러졌다.

“누, 누구야! 시발, 나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김촌상은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로 보이는 얼굴을 보고 입이 굳어 버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입안으로 흙이 들어가는데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안녕?”

이건기. 그 무서운 얼굴이 구덩이 위에서 김촌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촌상은 그대로 석고상처럼 굳어서 그냥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다리는 다 나았나 보지?”

건기는 직접 구덩이로 들어와 김촌상의 샷건부터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인벤토리에 넣은 후 손에 든 노멀소드의 옆면으로 그의 허벅지를 툭툭 건드렸다.

“다시 썰어 줄까?”

김촌상은 검날의 묵직한 감촉이 다리에서 느껴지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렸다.

그는 기겁하면서 건기에게 말했다.

“아, 아니! 항복할게! 그러니 목숨만은 살려 줘! 글랙은 여관주점 2층에서 낮잠 자고 있고, 마일은 1층에서 부하들과 술을 마시고 있고. 로스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세금을 걷고 있어! 그리고 파이브는……!”

파이브.

다른 셋과 달리 그는 옐로우 클랜의 간부였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그를 팔아넘겨도 되는 걸까?

설사 여기서 살아남아도 클랜에서 보복할 가능성이 있었다.

김촌상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미 ‘파이브’란 이름이 건기의 귀에 들린 뒤였다.

“파이브? 파, 이, 브? 흐음…….”

건기는 검 끝을 김촌상의 목에 댄 채 잠시 기억을 떠올렸다.

과거 그가 싸웠던 강자들.

그 중에 파이브란 이름은 없었다.

“너희 어느 클랜이었지?”

“예, 옐로우 클랜!”

말할 수 있는 건 말해 주고, 말할 수 없는 건 철저히 거짓으로 은폐.

김촌상은 그것으로 목숨을 구걸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뭐든지 말할게. 내가…….”

“파이브가 누구지?”

건기는 냉큼 김촌상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목숨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도 김촌상이 숨기는 것으로 보아, 결코 가볍게 넘길 놈이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말, 해. 손에 힘 빠진다.”

건기는 검을 잡고 있는 손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검 끝이 김촌상의 목을 살짝 파고들면서 살갗에 생채기가 났다.

“말 못해! 그것만은 말 못해! 말해도 죽고 말하지 않아도 죽는다면, 말 안 하고 죽는 편이 나아! 클랜에 보복당하는 것보단 낫잖아!”

김촌상은 진심을 담아 외쳤다.

그의 눈을 본 건기는 한숨을 쉬면서 그의 각오를 받아들였다.

“좋아, 네 뜻대로 해 줄게.”

건기는 기계적으로 팔을 움직여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단숨에 목을 찌를 기세로 검을 훅 뻗었다.

“으아아악, 그만!”

김촌상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바지는 축축이 젖어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그의 가린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 살려 줘. 마, 말할게.”

각오의 끝은 본능에 의한 패배.

모든 이가 각오를 위해 죽음을 불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말해.”

건기는 김촌상으로부터 파이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후 검의 손잡이로 그의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키고는 밧줄로 그의 몸을 묶고 그 입에 재갈을 물렸다.

“후우. 이번엔 제법 싸울 만하겠는데?”

건기는 구덩이에서 나와 몸에서 흙을 털고 있는 태구와 존을 쳐다봤다.

두 사람도 그처럼 무덤에서 막 나온 후였다.

“두 사람은 싸울 줄 알아요?”

“오우! 존, 싸울 쭐 모울라요우!”

존은 괴상한 발음으로 자신이 미국인임을 최대한 어필했다.

그렇게 하면 싸움에서 빠질 수 있단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는 이건기였다.

“너 이 새끼, 아까 김촌상이랑 대화하는 거 다 엿들었는데 잘만 말했잖아? 존나!”

이건기는 존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다.

“오우! 어머니!”

존은 정강이를 부여잡고, 일부러 크게 엄살을 피우며 바닥에 쓰러졌다.

“저 새끼, 지금 욕하지 않았어?”

태구가 의심의 눈길로 존을 가리키며 건기에게 물었다.

“글쎄요.”

“어머니라고 했잖아? 미국인이 어머니라고 하면, 그건 욕이라고! 예전에 영화에서 봤어!”

“그래요?”

건기는 장난 반, 정색 반을 섞은 표정으로 존과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일부러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존, 내 손에 뒈지기 싫으면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라.”

“예, 알겠습니다.”

존의 발음이 갑자기 좋아졌다.

“좋아, 그럼 이제 생각을 하면서 말해. 아까 김촌상한테 들으니까, 지금 마을에 있는 일당 중 부하들은 원래 마을 사람이라며? 걔네가 왜 그쪽에 가담하기로 한 거지?”

“녀석들은 마을 주민이긴 하지만, 여기 출신이 아니라 떠돌아다니던 부랑자 무리예요. 그래서 힘 센 쪽에 붙은 거죠.”

“그럼 죽여도 문제없겠네?”

“네, 릭 씨만 빼고요.”

“릭? 그게 누군데?”

“우리 마을 관리관이요.”

“관리관이 강도단에 붙었다고?”

보안관이 마을의 치안을 맡는다면, 관리관은 마을의 행정을 맡는 직책.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 강도단보다 훨씬 더 가혹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릭 씨가 안 계시면, 마을에 관리관 할 사람이 없어요.”

마을이 MGF의 승인을 받아 독립적인 자치 구역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선 관리관과 보안관의 존재가 필수였다.

즉, 기존 관리관이 처벌 받게 되면 새로운 관리관이 선출될 때까지 해당 마을은 ‘비공식’이 되는 것이다.

보안관이 관리관을 임시 대행하는 것을 포함해 수많은 해결책이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MGF는 그다지 합리적인 조직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들 입장에선 세금을 내지 않는 거주 구역 밖 황야의 주민들에게 관리관과 보안관 제도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선심을 쓰는 것이었다.

“흐음, 그럼 그건 그렇다고 치고……. 혹시 윌리라고 알아?”

“윌리요? 혹시 스미스 영감님 손자 윌리를 말하는 건가요?”

“그 스미스 영감님이 광부야?”

건기는 자신이 본 노인의 특징을 자세히 설명했다.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며칠 전에 구슬 캐러 가셨는데, 돌아오실 날짜가 지나서 윌리가 걱정하고 있어요.”

확인 완료.

윌리, 스미스.

건기는 자신이 찾는 윌리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어색하게 웃으며 존에게 다가갔다.

“혹시 남는 관 있어?”

더럽게 기분 나쁜 미소를 본 존은 불길한 예감에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없는데요. 관은 시체가 생기면 그때그때 만들거든요.”

“그래?”

건기는 그들이 숨어 있던 무덤을 가리켰다.

“아까 보니까 관이 남아 있던데, 파내서 내용물 꺼내.”

***

“엣헴!”

로스는 간만에 느긋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파이브의 말에 따라 마을을 접수하고 나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세금 걷기’였다.

그는 푹신한 가죽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마음껏 게으름을 부렸다.

딸랑딸랑.

관리관 사무소 문에 달린 벨이 울렸다.

그 소리에 로스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왜 의자를 들고 계십니까?”

관리관, 릭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로스를 바라봤다.

로스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의자를 번쩍 들고 있었다.

그것이 로스의 벌 서는 자세라는 사실을 그가 알 리 없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로스는 얼굴을 붉히며 의자를 내려놨다.

그리고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 민망함을 떨쳐 내려 노력했다.

“세, 세금은 다 걷어 왔나?”

“그게 좀…….”

릭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내지 않던 세금을 내려니, 다들 형편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형편? 혀어엉펴어언? 험험!”

로스는 목청을 높이며 헛기침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냅다 릭의 멱살을 잡아서 번쩍 들어 올렸다.

개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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