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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정통부는 셧다운제를 방치했을까?

[[img2 ]]악법은 법일까요?

수천년 전 한 지성인은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셨습니다. 무법의 시대에는 악법이라도 있어야 했겠지만, 지금도 그 시대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을까요.

지난해 5월 청소년들의 심야시간대 게임접속을 임의로 제한하는 법(셧다운제)이 국회를 통과해 11월 시행됐습니다. 청소년 주무부처를 자처하고 있는 여성가족부는 업계 반대는 물론이거니와 이 법의 이해당사자인 청소년이나 부모들의 입장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법 제정과 시행을 강행했습니다.

규제법을 제정할 때 의당 거쳐야 하는 공청회도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그나마 진행된 공청회에는 패널은 물론 객석에도 동원된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공청회고 누구를 위한 법이었을까요. 규제법 시행 이후 여가부의 행보를 보면, 셧다운제 제정 취지를 의심할 만한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셧다운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지 한달 만에 온라인게임 업체 매출의 1%를 기금으로 징수하는 안이 발의된 것이지요.

여가부의 뜻대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제도 도입과 시행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행보는 지금이 21세기인지를 의심해 보기에 충분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여가부의 셧다운제 도입 목적은 ‘청소년 보호’입니다. 청소년과 아이들은 도움을 바라지 않아도 도와줘야 하는 존재인 만큼, 이들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 할지라도 법으로 제정하기에 앞서 정책 수요에 대한 검증과 제도 시행 이후 사회적 파장과 실효성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내려져야 합니다.

셧다운제는 제도 검토 초입부터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돼 왔습니다. 그리고 법 시행 2개월여 만에 예견됐던 대로 이 제도는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셧다운제, 도입 절차와 실효성도 의문

전문가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선진국 가운데 한국 정부의 셧다운제와 같은 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없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세계 최대 온라인게임 시장인 중국에서조차 검토 단계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 폐기한 제도 입니다.

여가부에 계신 분들이 정말 이런 지적을 듣지 못했을 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듣고서도 무시하고 제도를 도입한 것일까요. 전자든 후자든 제도 도입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해당 부처가 절차적 하자를 무릅쓰고 셧다운제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청소년을 통제하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 예견되고 증명된 지금에 와서 보면, 정부가 말한 청소년 보호의 명분은 말 그대로 ‘명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청소년 보호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여가부의 존치와 존속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게임 업계를 고른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도 시행을 기다렸다는 듯, 게임업계를 상대로 기금 징수 계획이 나온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여가부도 여가부지만 셧다운제 도입과 관련해 게임업계가 더욱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곳은 사실 문화관광부입니다. 정보통신부가 없어진 지금, 문화부는 유일무이한 게임산업 주무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부는 현재 게임산업은 물론 게임문화와 e스포츠에 대한 진흥과 규제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화부가 여가부의 셧다운제 도입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막지 못한 것은 물론,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게임업계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무기력한 문화부, 답답한 게임업계

셧다운제 취지가 청소년 보호라 해도 직접적으로는 게임업계를 겨냥하고 있는 규제인 만큼, 주무부처인 문화부의 판단아래 정책 입안이 이뤄져야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화부는 셧다운제 정책 주도권을 여가부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정부 부처 서열로도 한참을 웃도는 문화부가 여가부에 ‘밥그릇’을 빼앗긴 꼴이지요. 수년전 정보통신부와 게임산업 주무부처 자리를 놓고 치열한 부처 경쟁을 벌일 때를 기억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이 때문인지 요즘 대다수 게임업체들은 정보통신부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규제 걱정 없이 게임사업을 할 수 있는 정책 지원은 물론, 정보화촉진기금을 기반으로 풍부한 자금 지원까지 해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업계는 최초의 협회(한국게임산업협회)를 구성했던 2004년, 정통부가 아닌 문화부에 사단법인 인가신청서를 제출함으로써, 스스로 문화부를 유일한 게임산업 주무부처로 인정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문화부는 최초의 게임법(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관한법률)과 지원기관(게임종합지원센터)을 갖추고 주무부처로써 정통성을 주장했지만, 비단 그것 때문이었을까요?

당시 정통부는 게임협회가 산하로 들어오기만 하면, 당장 수십억원의 지원금을 협회에 지급하고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엄청난 규모의 예산지원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게임업계가 문화부를 선택한 것은 ‘규제’ 때문이었습니다. 정통부에 비해 지원정책과 예산은 터무니없이 작았지만, 게임 규제기구로 인식돼 온 등급분류기관이 문화부 산하 조직으로 있었던 만큼, 게임업계는 문화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 보답으로 문화부는 게임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 2010년까지 한국을 세계 3대 게임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정책(2006년, 2010게임산업 성장전략)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규제는 대폭 축소해 2008년까지 민간 자율심의를 시행하겠다고 선언했지요.

문화부와 여가부, 규제의 2중주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문화부의 지원 약속은 공염불이 됐습니다. 민간 자율심의를 시행하겠다던 문화부는 장관이 위원을 임명하는 게임물등급위원회를 만들어 심의 시스템을 더 강화했습니다. ‘바다이야기’ 역풍 때문이라는 게 당시 문화부의 핑계였습니다.

이렇듯 게등위를 출범시켜 규제의 폭과 강도를 더욱 강화한 것도 모자라, 지난해엔 게임문화재단을 설립해야 한다면서 게임업체를 대상으로 기금을 갹출하기까지 했습니다.

지난해엔 타부처에 게임산업을 규제할 수 있는 정책을 허용하기에 이르렀으니, 게임업계가 주무부처에 느끼는 배신감은 이미 ‘실망’ 수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최근들어 정통부가 주무부처라면 어땠을까 하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정통부였다면 이처럼 무기력하게 셧다운제를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청소년보호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가려져 있지만, 제도 자체가 갖고 있는 결함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셧다운제의 결함은 몇 가지 측면만 살펴보아도 쉽게 드러납니다.

▲법리적으로 셧다운제는 2중규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데다 ▲산업적으로는 플랫폼 별로 규제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문화콘텐츠 소비의 주체로 성장한 청소년층의 달라진 일상과 그들의 선택권을 일체 고려하지 않은 제도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게등위는 청소년 보호를 위해 학부모, 시민단체, 교수 등을 심의위원으로 위촉, 등급심의를 진행합니다. 여기에서 청소년 이용등급을 받은 게임물을 대상으로 다시 서비스 방식을 제한하는 규제를 한다는 것은 공급자 측면에서 명백한 2중규제입니다. 국내 어떤 문화콘텐츠도 이런 규제를 받는 것은 없습니다.

네트워크 기능 유무에 따라 셧다운제 적용 대상을 차별한 것도 문제입니다. 네트워크 기능이 없는 스탠드얼론(Stand Alone) 게임(콘솔게임이나 패키지게임, 모바일게임)의 경우, 온라인게임에 비해 결코 청소년의 이용 빈도가 낮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온라인게임을 이용하기 위해 PC 앞에 앉을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청소년들은 언제고 들고 다니며 이용할 수 있는 닌텐도나 모바일게임에 친숙합니다. 하지만 여가부는 이들 게임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게임보다 사교육부터 셧다운 해야

온라인게임 보다 청소년에게 덜 해롭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기업을 규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탠드 얼론 게임 대부분 외국계 기업이나 대기업을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결국 셧다운제는 만만한 한국의 중소 온라인게임 업체들만 때려잡는 셈이지요. 이 때문에 게임 업체 사이에서는 역차별 논란도 일고 있습니다. 규제의 명분을 떠나, 정책 형평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런 허술한 정책이 나오게된 근본 원인은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 때문입니다. 또 게임을 여가가 아닌 ‘유흥’으로 보는 시각 때문입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K팝, 온라인게임 등 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 문화콘텐츠의 소비 주체입니다. 이 세대는 LP판이 아니라 디지털 음원을 듣고, 만화책이 아니라 e북을 보며, 놀이터나 운동장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친구들과 만납니다.

물론 이들이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은 디지털 기술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이상 오프라인에서 여가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사회구조 탓이지요.

환경이 이러하다보니 청소년들에게 온라인게임은 단순한 유흥꺼리가 아니라 여가이자 친구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답답한 환경 안에서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합니다.

물론 게임이 여가의 의미를 갖는다 할지라도 적절한 조절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 적절한 수준을 서비스 업체에 요구하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지요.

자녀에게 장난감을 골라주고 그 장난감을 갖고 노는 시간을 관리하는 일은 가정의 일이지 장난감 회사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난감 회사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주력하는 게 맞습니다. 사용 시 주의사항과 부모들이 알아야할 내용을 설명해 줘야할 의무는 있습니다.

요컨대 청소년의 위상과 청소년들의 문화가 시대에 따라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면, 그래서 셧다운제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제도를 통해서라도 게임과 아이들을 분리해 내고 싶다면, 진정 그렇게 하고 싶다면 여가부는 게임이 아니라 청소년의 시간을 지배하는 ‘사교육’부터 셧다운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을 온라인 세상에서 오프라인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계속 학원으로 내몬다면, 그들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학원이 끝난 후 다시 PC 앞에 앉아 온라인게임 접속하게 될 것입니다.

[데일리게임 이택수 편집국장 libero@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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