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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4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이 자슥이, 어른한테 싸가지 없게! 너 경찰한테 짭새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벌금 때릴 수 있는 거 알아 몰라? 앙? 콱 이놈을 그냥…….”

제복을 입은 경찰 둘이 그 젊은 남자의 뒤쪽으로 다가왔다. 각각 20대 후반 30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어깨에는 이파리 두세 개가 박혀 있었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왜 이 모양인지 몰라. 어른 무서운 줄을 모른다니까.”

사복 경찰이 혀를 차며 투덜거린다. 하지만 말하는 그 자신도 고작 서른이나 될까 말까 한 정도로 어른행세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너 잘 걸렸다. 가뜩이나 요즘 건수 채울게 없어 과장님한테 까이고 있었는데 너라도 데려가야겠다.”

사복경찰에게 대표로 붙잡힌 고등학생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한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습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제복 경찰 둘이 한규 곁으로 다가왔다.

“너도 이리 와. 보아하니 학생 같은데 이 시간에 왜 학교에 안 있고 이런데 있는 거야?”

갑작스러운 경찰의 말에 한규는 에? 하며 손사레를 쳤다.

“아니에요 저는. 그냥 운동하던 중이에요. 오늘은 개교기념일이에요.”

“뭔 개교기념일. 너같은 놈들은 1년 내내 개교기념일이지? 하여간 변명하는 말은 바뀌질 않아요.”

경찰의 말에 한규가 갑자기 사복차림의 경찰을 향해 말을 건다.

“에에? 성철형! 나 그런애 아닌거 알잖아요?”

제복경찰이 깜짝 놀라며 사복경찰에게 말했다.

“계장님, 아는 애입니까?”

사복차림의 경찰도 지금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한규를 알아보고는 씩 미소를 지었다.

“이거 누구야. 한상이 동생이잖아.”

“성철형.”

“그런데 너 그런놈이잖아. 이쪽에서는 유명하잖아? 한규한테 걸리면 한큐에 나간다고.”

“그, 그야 덤비는놈을 놔둘수는…….”

“그냥 잠자코 따라오니라. 형이 점심 사줄게.”

한규는 경찰 성철의 말에 얼굴을 찡그렸다.

“엉터리!”

한규의 가벼운 조깅길은 그대로 경찰서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규의 형 성한상의 친구 조성철은 여성청소년계의 계장이었다. 경찰대학 출신으로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계장일을 하고 있다. 수더분한 성격, 넓은 오지랖 덕분에 나이많고 직급이 낮은 다른 경찰들에게도 좋은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붙잡아온 교복차림의 학생을 부하직원에게 떠맡긴 후, 조성철은 한규를 소파에 앉혔다. 비타민 드링크 하나를 앞에 놔주며 밉살스레 웃는다.

“한규 너 체육특기생이랬지? 피해 안가게 처리할 테니까 적당히 이름만 빌려 줘. 요새 건수가 너무 없어서 아주 죽을 맛이니까.”

“아, 형! 경찰이 그래도 되는거야?”

“야야, 친구 좋다는게 뭐냐?”

“내가 무슨 형이랑 친구야. 우리 형이 친구지.”

“그게 그거얌마. 너, 벌써 쌈질로 몇번이나 여기 왔었잖아. 뭘 새삼스레 빼고 그래?”

“그건 다 정당방위라니까.”

성철이 갑자기 두 손을 모으더니 앞으로 손바닥을 쭉 뻗는다.

“장풍으로?”

“아 놔! 장풍 아냐! 장으로 때린건 맞지만…… 그냥 잘못 맞아서 기절한거 뿐이야!”

성철이의 말에 어성청소년계 직원들이 쿡쿡 웃음을 터트린다. 석달전 한큐의 장풍사건은 나름 여기 안양경찰서 안에서 유명한 편이었다.

경찰서 안에서까지 씩씩거리던 한규의 싸움상대가 경찰의 눈이 느슨해진 틈을 타 한규에게 덤벼들었다가 가슴팍을 얻어맞았다.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 게거품까지 물었는데, 그 꼴을 보곤 성철이가 장풍이다! 하고 외친게 소문의 발단이었다.

“너 유단자가 사람패면 가중처벌 있는거 알아 몰라?”

“그만하라니까! 자꾸 그럼 나 그냥 간다.”

“어허, 공권력을 무시하는거냐?”

“매영이 누나한테 이른다.”

성철이의 표정이 대번에 바뀐다.

“애가 치사하게…….”

“아, 몰라. 아무튼 밥 사준댔으니까 맛있는걸로 사줘야 해.”

“알았어, 알았어.”

성철은 고개를 끄덕이곤 한규에게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요새 한상이는 뭐한다고 통 연락도 안되냐? 여전히 게임개발인지 뭔지 때문이냐?”

“응? 어, 그렇지 뭐.”

한규는 드링크의 뚜껑을 돌려따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형이야 성철형이 더 잘알잖아. 그 날 이후로 4세대 게임기인가를 개발한다구 아주 미친 듯이 일하고 있어.”

“걔야 뭐 고등학교때부터 알아줬지…….”

성철은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는 듯 잠시 먼눈을 하곤 한규에게 다시 눈을 돌렸다.

“형제 둘이서 고생 많다.”

“뭐 이제는 익숙해.”

“그래서 그 4차원 게임인가는 해 봤냐? 재미는 있냐?”

“응?”

갑작스런 물음에 한규가 고개를 갸웃하고, 성철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좀 팔리면 너네 형편좀 나아질까 싶어서 그렇지. 전에 인터넷 뉴스 보니까 꽤 크게 다루고 하더라고. 기사 제목도 이제야 드디어 21세기! 뭐 이딴식으로 수선을 떨어대고. 한상이 얼굴도 신문에 실렸어.”

“형이야 뭐 월급쟁이잖아. 전에 만든 무림비혈사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대만같은 동양권에서 나름 잘 나가고 있고, 슬슬 유료화한지도 2년이 넘었는데, 그냥 팀장이라고 팀장 봉급이나 받고 다니고 있어.”

“하긴 그쪽이야 늘 그 모양이지.”

중얼거리며 성철이가 한규의 어깨를 툭툭 친다.

“니가 형좀 잘 보살펴 줘. 그러다 몸이나 상할까 걱정이다.”

“형이야 알아서 잘 하니까.”

“그래도 임마.”

“알았어.”

한규가 끄덕거린다. 그를 보던 성철이 갑자기 손바닥을 내려친다.

“아, 그러고보니, 너한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

“응? 누구?”

성철이는 대답을 하는 대신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내선으로 전화를 걸고는 거기다 대고 주르륵 말을 뱉는다.

“호열이냐? 니가 전에 말했던 한상이있잖아. 걔 동생 여기 와있어. 한번 만나봐라.”

수화기를 내려놓는 성철이에게 한규가 말한다.

“형도 참…… 우리형 만나보고 싶다는 사람을 내가 봐서 뭐한다고.”

“하하, 그야 그렇지만, 애가 괜찮아. 알아둬서 손해볼거 없잖아? 한동네 사람이기도 하고. 사이버수사팀쪽 애인데, 아주 그냥 게임에 미쳐 살아. 4차원 게임인가 뭔가 기사도 그 녀석이 먼저 보고 나한테 얘기해 준거야. 어디서 내가 한상이 친구라는 얘기를 들었는지…….”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노크소리가 들리며 젊은 남자가 여성청소년계 사무실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하십니다.”

스물 일곱이나 그쯤 되어보이는 젊은 경찰이었다. 이곳의 다른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사복차림인데다가, 두툼한 뿔테안경까지 쓰고 있어 경찰이란 느낌은 거의 없었다.

“계장님!”

“어, 호열이, 이리 와.”

최호열이라는 남자는 바로 한규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성한상 님의 동생입니까?”

한규는 열살이나 나이많은 사람에게서 높임말을 듣자니 조금 어색했다.

“아, 네…….”

성철이 핀잔한다.

“뭐가 입니까냐? 열 여덟짜리 애한테.”

“아, 예 그게 버릇이라서…….”

호열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다시 한규에게 말을 건다.

“그래서 샹그릴라는 몇퍼센트나 창조된거야? 혹시 알파테스터를 하고 있어?”

한규는 알파테스터라는게 게임개발사 내부에서 게임을 테스트 해보는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비록 방금 전에도 샹그릴라를 플레이 해봤지만, 아직 외부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단계는 아니었다. 한규는 호열의 물음에 적당히 얼버무려 답했다.

“아니요. 전 아직 고등학생이라…… 하지만 샹그릴라를 플레이 할수 있는 게임기는 집에 있어요. 형 말로는 거의 다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정확히는 저도 몰라요.”

“오오! 오픈 베타는 언제래?”

오픈베타는 오픈 베타 테스트를 말하는 거였다. 일반인들에게 게임을 첫선보이는 자리다.

“그건 저도 잘…… 그런데 말하는걸로 봐서는 올해를 안넘길거 같던데요?”

한규는 말을 하며 정말로 사람의 눈이 반짝거릴수 있다는걸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게임 소식을 듣는 호열의 눈은 정말 뭐가 쏟아질 것 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하여간 적당히 해 둬라. 너 그러다가 잘린다.”

성철이 호열에게 한마디 한다.

“걱정 마십시오. 샹그릴라는 게임폐인을 막기 위해 잠자는 동안 플레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타이머 설정도 가능합니다. 게다가 게임이 끝남과 동시에 일상으로 돌아가기 쉽도록 짧은 시간동안 유지되는 최면 같은것도 걸어준다고 합니다.”

“알았다, 알았어. 너나 많이 하세요. 나는 밤에는 매영이랑 노느라 바쁜사람이니까.”

애인없는 호열의 감정을 건드리려 한 말이건만, 호열은 전혀 관심없다는 듯 여전히 ‘샹그릴라’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신불수 같은 사람들이 건강한 뇌내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정부의 지원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의학계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니까요.”

성철의 반응이 뜨뜻미지근 하자 호열의 눈이 한규에게로 옮겨갔다.

“너희 형은 그런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거야. 아아, 빨리 베타에 들어갔으면…… 아니, 바로 유료화 해도 괜찮아. 이용료가 내 봉급 반이라 해도 꼭 할거야!”

호열의 마니악한 반응에는 한규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하하, 하고 마른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성철이 한마디 한다.

“으이구, 너같은거 데리고 일하는 너네 계장님이 불쌍하다. 내년이 정년인데…….”

성철에게 점심을 얻어먹은 후, 한규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그 앞에 주저앉았다. 사실 호열이라는 사람만큼은 아니라 해도, 무림비혈사에 흠뻑 빠져있는 중이었다.

피가 튄듯한 글자체로 무림비혈사 라는 타이틀 로고가 켜지고, 곧이어 화려한 동영상이 펼쳐졌다.

엔터 키를 눌러 넘길까 하다가 한규는 마침 목이 마른 듯 하여 냉장고로 향했다. 그 사이 모니터에서는 멋진 도복을 입은 도사가 장풍을 날리고, 헐벗은 차림의 아낙내가 검을 휘두른다.

한규는 우유 한잔을 들고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서버를 고르고 전부한큐 캐릭터에 클릭을 했다. 도포를 털며 전부한큐가 장풍을 날리는 동작을 취한다. 그리고 한규는 무림비혈사 속으로 빠져들었다.

‘전부한큐’님, 강호의 모험을 즐길 준비가 되셨습니까?

나의 양 손을 살펴본다. 좌수에 어려있는 냉기, 오른 손에서 어렴풋이 피어나는 아지랑이. 구구현현환(九九玄玄丸)은 북해 너머 빙원에서 채취할수 있는 천년빙화의 화분가루를 주재료로 만든 냉기의 결정체이다. 독각화사담(獨角火蛇膽)은 먼 남쪽 만사곡에 사는 커다란 뱀의 우두머리, 독각화사의 쓸개였다. 각기 차가운것과 뜨거운것의 극성을 담은 영약들로 나는 그 둘을 내 본원진기에 녹이는데 성공할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화가 바로 이 두 손이다.

자부심을 뒤로한채, 나는 거리를 배회하였다. 그 순간, 한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들려왔다.

“강호의 영웅이시어 도와주소서!”

그는 일개 촌로에 불과했다. 넝마가 된 옷을 걸친 반백의 남자는 얼굴에 온통 피갑칠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퀘스트다. 하지만 그건 생각만으로 떠올릴 뿐, 엔피씨와는 역할에 맞는 대화를 해야하는 이 세계에서 입밖에 낼 수 없는 단어이다.

“무슨 일인가?”

나의 물음에 촌로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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