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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인터뷰] 이재홍 게임정책학회장 "K-게임 IP, 서사와 정책으로 키워야"

한국게임정책학회 이재홍 학회장.
한국게임정책학회 이재홍 학회장.
한국 게임산업이 거대한 전환점에 섰다. 기술력은 세계 정상급 수준에 도달했지만 콘텐츠 소비 방식은 급변하고 있다. 숏폼 콘텐츠가 이용자의 시간을 잠식하는 가운데, 인공지능(AI)과 XR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런 흐름의 한가운데서 데일리게임은 창간 18주년을 맞아 원로 게임인(人)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을 만나 대한민국 게임의 현황과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이재홍 학회장은 숭실대학교 예술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오랜 기간 게임을 포함한 스토리텔링을 연구해왔으며, 한국게임학회 회장과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 한국콘텐츠진흥원 비상임이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게임정책학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 2기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새 정부 게임 정책 논의에도 참여하고 있다.
◆AI 시대에도 결국 콘텐츠의 본질은 이야기
[창간 인터뷰] 이재홍 게임정책학회장 "K-게임 IP, 서사와 정책으로 키워야"
"기술은 이미 충분히 갖췄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진 가장 깊은 우물, 즉 우리 고유의 이야기에서 길어 올린 서사로 승부할 때입니다. 진정한 인터랙티브 시대의 미래 성장동력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닌, 인간의 정서를 만지는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에 있습니다."

이 학회장은 그래픽과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지금, IP의 생명력을 결정짓는 핵심은 결국 내러티브라고 단언했다. 과거 '리니지' 시리즈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같은 장수 게임들이 그랬듯 이용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서사가 없다면 게임은 반복적인 소비재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아크레이더스', '붉은사막', '트릭컬', '블루 아카이브' 등 다양한 장르의 K-게임이 게임을 넘어 영상과 음악, 커뮤니티, 2차 창작 등으로 이용자 경험을 확장하며 주목받는 현상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 학회장은 "이용자들이 세계관과 캐릭터에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확장할 때 IP의 수명도 길어진다"며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재홍 학회장은 생성형 AI가 게임 개발 전반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지만, 미래 경쟁력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서사에 있다고 봤다. AI가 창작을 보조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문화와 정서가 담긴 고유한 이야기를 만드는 영역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것.

기술력은 상향 평준화…이제는 '크로스컬처텔링'의 시대
[창간 인터뷰] 이재홍 게임정책학회장 "K-게임 IP, 서사와 정책으로 키워야"
스토리텔링이라는 무기를 들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이 학회장은 '크로스컬처텔링(Cross-Culture Telling)'을 제시했다. 자국의 고유한 문화적 정서나 전통을 글로벌 이용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융합하는 전략이다. 문예창작과 게임 연구를 함께 이어온 그는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IP를 확보하는 것만이 이용자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 학회장은 "과거에는 그래픽과 기술력이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에는 이용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가장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세계 시장에서 화제를 모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 게임사 역시 우리 문화와 정서를 적극적으로 콘텐츠에 녹여낼 필요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학회장은 "이제는 한국적 소재와 정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야기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기술은 이미 충분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인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벌이 된 숏폼, 게임도 새로운 경험 제시해야
[창간 인터뷰] 이재홍 게임정책학회장 "K-게임 IP, 서사와 정책으로 키워야"
콘텐츠 소비 환경 변화 역시 게임산업이 주목해야 할 과제다. 최근 숏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이용 행태 변화는 게임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짧은 콘텐츠를 자주 접하는 데 익숙해진 이용자에게 게임 본연의 재미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이 학회장은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며 "게임 역시 변화한 환경에 맞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현재 게임시장을 분석했다.

달라진 이용자의 게임 이용 행태로 방치형 게임과 서브컬처 게임의 성장, 이용자 참여형 콘텐츠 확대 등을 대표적인 변화 사례로 꼽았다. 다만 숏폼 시대가 곧 깊이 있는 콘텐츠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AI 기술 발전과 인터랙티브 콘텐츠 확산이 게임 서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과거 장편 소설이 단편 소설로, 다시 장편 소설로 변화한 트렌드가 게임 산업에서도 재현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어 이 학회장은 "과거에는 개발자가 준비한 이야기를 이용자가 따라가는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이용자가 이야기의 일부를 직접 만들어가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강현실(AR)과 융합현실(XR)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게임의 가능성이 넓어지고, 신선한 경험이 게임산업의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며 "'포켓몬 고'를 처음 접했을 때 '우리는 모니터의 결계에서 풀려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은 앞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화의 시기에 맞서는 게임산업, 정부도 육성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창간 인터뷰] 이재홍 게임정책학회장 "K-게임 IP, 서사와 정책으로 키워야"
이처럼 콘텐츠와 기술 패러다임이 격변하며 미래 성장동력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할 행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게임산업 진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업계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새로운 약속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정책 체계라는 게 이 학회장의 진단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제시된 게임산업 육성에 대한 로드맵과 의지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특히 게임 정책의 전문성과 연속성 부족을 현행 체계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여러 부처와 기관에 파편화된 정책, 담당자의 순환보직으로 인한 전문성 확보가 어려운 구조 등을 예로 들었다. 이 학회장은 "게임산업은 문화와 기술, 산업이 결합된 복합 분야인데 정책은 여전히 단편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며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정책 기조가 흔들리는 구조에서는 장기적인 산업 육성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게임산업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타워 필요성에도 공감을 나타내면서도, 조직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다. 게임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철학과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진흥 정책과 인재 양성, 투자 지원, 글로벌 진출 전략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이 학회장은 "한국 게임산업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며 "정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산업을 믿고 꾸준히 지원할 수 있는 정책 철학"이라고 정리했다.

서삼광 기자 (seosk@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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