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 전 계획에 없이 갑작스럽게 유비소프트(Ubisoft) 핀란드 스튜디오로 이직하게 되면서 적도 위 싱가포르에서 국토의 1/3이 북극권에 들어있는 핀란드로 이사오게 됐습니다. 유럽 생활이 처음도 아니었지만 서유럽과는 또 다른 북유럽에서의 생활은 하루 하루 색다름의 연속이었고, 다행히도 이제는 가족 모두 안정적으로 정착해 이렇게 북유럽에서의 생활을 나눌 수 있는 기회까지 갖게 됐네요. 핀란드에서의 4년이 지난 지금은 메타코어 게임즈(Metacore Games)라는 회사의 기술 총괄(Tech Lead)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탐험과 여정은 그들이 누군가를 폭력적으로 정복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바이킹은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목축을 하며 마을을 개척하고 농지를 개간하며 열악하고 척박한 자연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새로운 개척에 나섰다고 합니다. 북극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인 그린란드도 이들이 새로운 마을을 만들고 경작하기 위해 찾아 도착한 곳이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범죄와 추방, 속임수와 약탈, 그리고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포함된 구전의 역사이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바다를 건넜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뜬금없이 바이킹의 탐험과 개척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제가 핀란드 사람들과 회사에서 발견한 독특한 문화와 사고방식을 만들어 낸 것이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북유럽 게임 회사에서의 제 경험들을 하나씩 이야기해 나가려고 합니다.
최근에 제가 있는 팀에서 이미 작동 중인 시스템에 추가적인 기능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들 쉽게 생각하고 접근했죠. 이미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고, 요구 사항도 그리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진행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막히게 됐습니다.
조금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일반적인 수식을 변수들과 같이 입력하고 그것을 분석해 수식에 맞춰 모든 계산을 한 다음 그 결과를 돌려 주는 것이었는데, 수리적인 계산만이 아닌 논리적 계산도 가능해야 했으며 다양한 형태의 조건식과 함수식도 처리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변수의 데이터는 어떤 것이 올지 모르니 가능한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다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수식과 별도로 처리돼야 하는 상황이었죠.
처음에는 해당 기능을 직접 구현하려고 했지만 설계를 진행하면서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직접 구현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했죠. 게다가 직접 만든다고 해도 정말로 모든 상황에서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것만도 너무 오래 걸릴 위험성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홍성민의 유럽에서 게임 개발하기①] 바이킹 정신이 깃든 북유럽 개발 문화](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2080816381703649da2c546b3a112169111185.jpg&nmt=26)
서구 개발자들이 오픈소스에 더 적극적이고 다른 사람의 코드를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한국보다 덜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나라마다, 혹은 회사마다 오픈소스를 활용하는 수준의 차이는 있었는데 핀란드의 회사들은 서구권의 다른 곳보다도 더욱 적극적이고 개방된 분위기로 오픈소스를 활용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저도 예전에는 제가 직접 제작한 코드가 아니면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의 결과물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을 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쩌면 탐험과 개척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제한적인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이고 실용적이어야만 했던 바이킹 생활 문화와 닿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에 공유와 협력의 분위기가 같이 기반이 돼 서로 큰 시너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픈소스의 사용과 타인과의 협력을 통한 결과물의 공유 그리고 그것을 통한 시너지의 효과는 어쩌면 자원도 사람도 경험도 모두 부족한 환경에서 슈퍼셀, 로비오, 레미디(Remedy) 등의 유니콘들이 생겨나고 리눅스와 같은 전 세계를 움직이는 기반 운영 소프트웨어, 노키아와 같은 실용적인 제품들을 만들 수 있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서로 협력하고 아름다운 조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강한 경쟁도 있습니다. 다만 이 경쟁은 서로를 상대적으로 이기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절대적으로 나은 결과를 만들려 하는 경쟁입니다. 특히 공개적이고 투명한 경쟁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것도 핀란드의 게임 개발사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 중 하나입니다.
핀란드에서는 한 회사의 제품이 어떤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거나 성공을 하게 되면 그 성공과 경험을 개방된 분위기에서 편하게 공유합니다. 경쟁사를 적대시하거나 우리 것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과 배운 점들을 공유하고 서로 토론을 통해 개선과 발전을 도모 합니다. 그러면서 각자의 방법으로, 형태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제품에 덧입히고 녹여 내어 더욱 발전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로 모여 의견을 주고 받으며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이죠. 물론 남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차용하면 크게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공개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나만의 새로움을 얹는 것은 같이 성장 하면서도 다양한 발전을 만들어 내는 결과가 됩니다. 어쩌면 이런 경쟁이 우리가 말하는 선의의 경쟁 아닐까요?
북유럽에 와서 제가 처음 느꼈던 그리고 자주 느끼는 업무 문화를 간단히 이야기해 봤네요. 앞으로 하나씩 이곳의 특징적인 혹은 색다른 점들을 저의 관점에서 풀어 보려고 합니다.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가끔은 한국도 이러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가끔은 그래도 한국이 낫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구 반대편의 거리 만큼이나 멀고 다른 곳임을 생각하면 이들의 방식과 문화도 이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시점의 최선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언제나 다른 것들을 보고 배우고 익히는 것은 참 재미난 것 같습니다.
정리=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