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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각성자, F급으로 회귀하다] 1화

[SSS급 각성자, F급으로 회귀하다] 1화
[데일리게임]

마탑 100층.

초토화 된 대지.

땅에 꽂힌 검날.

S급 각성자 이건기는 부러진 마검에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크윽, 망할 새끼!”

앞으로 겨우 한 방이었다.

마왕과의 싸움 직전에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후후후.”

건기의 앞에 선 마왕 메피스민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즐거웠어, 이건기. 너야말로 나에게 어울리는 진정한 호적수야. 지금 네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앞으로 고작 한 방이었거든.”

건기는 마왕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내가 이대로 포기할 것 같아?”

“포기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넌 혼자고, 무기도 없고, 스킬도 다 썼지? 남은 거라곤 그 잘난 주둥이뿐이잖아?”

메피스민은 몸을 낮춰 건기와 눈을 맞췄다.

“기꺼이 칭찬해 줄게. 내게 주어진 무한한 기회 중 처음으로 널 이긴 거야. 300번도 넘게 싸웠지.”

“기회? 300?”

건기는 이마에서 흐른 피가 눈동자를 타고 흐르는 와중에 뭔가를 깨달았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예감.

제발 속으로 그것만은 아니길 간절히 기도했다.

“너…… 돌아갈 수 있는 거야?”

“그래. 너희 인간이 날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비결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넌 아주 악착같이 날 패배시켰어. 책략을 쓰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졌겠지.”

메피스민은 우월감을 만끽하며 건기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지난 세월. 너와의 싸움은 아주 즐거웠어. 그러니 상을 줄게.”

“상? 네 부하라도 되라고?”

만약 메피스민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건기는 입안에 고인 피라도 뱉어 줄 심산이었다.

그러나 마왕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네게도 기회를 주겠어.”

너무 뜻밖의 소리.

건기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제 정말 우리 둘 다 공평한 조건인 거야. 서로를 기억한 채 패배의 굴욕감을 갖고 진검승부다! ‘마탑의 달’에 걸고!”

미친놈.

건기는 혀를 내둘렀다.

현재 마왕은 도저히 이성적으로 대화할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왜 네 장단에 맞춰 줘야 하지? 그냥 죽여주는 게 어때? 어차피 마탑에는 널린 게 각성자잖아? 하나 골라잡아, 나 빼고!”

“아니, 아니, 아니지!”

메피스민은 한 손으로 건기의 목을 와락 움켜쥐고는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렸다.

“네가 아니면 안 돼!”

“뭐?”

“그 굴욕감! 그 증오! 이젠 네가 느낄 차례야. 지금의 난 그 어느 때보다 기쁨으로 충만하거든. 그러니 순순히 내 자비를 받아들여.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메피스민은 건기의 목을 더 세게 쥐면서 목을 졸랐다.

“그렇지 않으면 탑 밖으로 나가 지구의 모든 인류를 멸하겠어.”

“어쩌라고? 미친 새끼야! 그냥 마음대로 해. 그딴 소리 지껄인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그리고 나에게 패배한 널 무한히 회귀시켜 주마.”

“무한……히?”

“무한히 나와 함께 놀아 주는 꼭두각시가 되는 거야. 영원히 나에게 패배해라, 이건기!”

건기는 기가 막히고, 목도 막혀서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서 한 마디 내뱉었다.

“시발.”

마지막 분노.

건기의 몸에서 약한 진동과 함께 툭하고 힘이 빠졌다.

최강의 S급 각성자, 이건기.

그는 마왕의 자비를 받아 F급이던 과거로 돌아갔다.

F급, 리트라이

2년 전, 또는 현재의 오늘.

그리고 마탑 1층.

건기는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는 당장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아스팔트의 단단함에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로 돌아온 건가?”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게 즐비한 건물과 행인들.

그리고 잘 정비된 가로수길.

그러나 어디에도 자동차와 도로는 없었다.

그리고 건물들 너머 저 멀리,

천장까지 닿은 회색 장벽은 커튼처럼 거주 구역의 절반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 장벽과 맞닿아 있는 천장.

그곳에서 뿜어지는 은은한 빚은 24시간 내내 마탑을 비추는 조명이었다.

건기는 손목에 찬 시계로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정말 2년 전이잖아?”

오늘은 마탑으로 들어온 첫날.

막 수송선에서 내린 후.

건기는 그렇게 추측했다.

모든 걸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처음 마탑에 들어온 날의 감정은 기억하고 있었다.

건기는 눈을 감았다.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고,

3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

기적처럼 마탑이 솟아올랐다.

위치는 대한민국의 동해.

유엔은 마탑을 조사하여 이곳에 새로운 자원과 생명체가 있음을 발견했다.

첫 조우 당시 벌어진 전투에서 인류의 무기는 마탑의 생명체에게 통하지 않았다.

상황의 반전은 인류가 마탑 ‘밖’이 아닌 마탑 ‘안’의 무기를 쓰면서부터였다.

마탑 안의 재료로 제작된 무기.

칼과 방패 같은 근접 무기와 더불어 총의 역할을 대신한 ‘마총’이라는 유사 총기가 쓰였다.

마총에선 탄환 대신 ‘광선’이라 불리는 특수한 빛이 나왔다.

물론 이 빛도 마탑 밖과는 조금 개념이 달랐다.

결국 인류는 마탑의 층을 차례차례 정복.

국제 연합의 식민지로 선포하며,

MGF란 기관의 통치 아래 마탑의 자원을 캐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일획천금을 위해,

어떤 이들은 현실을 피해,

어떤 이들은 모험을 위해,

마탑으로 들어갔다.

선박으로 오가는 이세계.

사실상 마탑과 지구는 다른 공간으로 취급됐다.

“후우.”

건기는 차갑게 눈을 떴다.

메피스민이 ‘마탑의 달’을 걸고 맹세한 이상, 그것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었다.

진검승부.

이번 싸움에서 건기가 승리한다면, 마왕은 자신이 가진 무한한 기회를 포기할 것이었다.

“스탯!”

건기의 외침.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그의 스탯과 스킬 정보가 띄워져 있었다.

마탑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이 신비한 힘을 사람들은 ‘시스템’이라 불렀다.

그리고 시스템을 다루는 마탑의 주민들을 가리켜 또 다른 이름으로 ‘각성자’라 칭했다.

건기는 스탯 창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젠장.”

***

[등급 : F]

[근력 : F] [순발력 : F]

[지구력 : F] [지력 : D]

[스킬 : 없음]

***

초기화란 말이 딱 맞는 상황.

건기는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날짜로 봐선 썬더 블레이드가 있어야 할 텐데? 왜 없지? 설마 나비효과 때문에 미래가 조금씩 변한 건가?’

스킬과 스탯은 곧 신분.

마탑에선 실력이 전부였고, 그것이 곧 사회적 계층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당연히 있어야 할 스킬의 빈자리는 치명적이었다.

‘메피스민하고 싸우려면 어떻게든 상층으로 올라가야 해. 하지만 스킬이 없는 상태에선 광부나 짐꾼으로 일을 얻어야 하는데…….’

마탑에 들어온 이들은 대부분 빈털터리 신세.

때문에 길드로부터 대출을 받아 일을 시작하는 게 기본이었다.

기간 내 갚지 못하면 현상 수배범으로 전락.

갚더라도 이자에 허덕이면 그대로 하층민.

결국 얼마나 빨리 대출을 갚고 위로 올라가느냐가 중요했다.

‘최대한 빨리 상위 층으로 가야 강해질 수 있어! 일단 대출을 받아서 시작하자.’

스탯은 초기화됐어도 경험과 전투 센스는 그대로.

그렇다면 해 볼 만했다.

[지력이 올랐습니다.]

[지력이 올랐습니다.]

[지력이 올랐습니다.]

***

[등급 : F]

[근력 : F] [순발력 : F]

[지구력 : F] [지력 : A]

[스킬 : 없음]

***

건기는 기억을 떠올린 것만으로 지력이 올라갔다.

그리고 올라간 지력 스탯에 맞춰 각성자의 등급도 올라갔다.

그가 전생에서 겪은 경험치를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모든 것은 시스템의 결정.

각성자의 강함, 등급은 모두 시스템이 자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었다.

생각을 마친 건기는 그대로 곧장 길드 사무소로 향했다.

그런데 도중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응?”

뚜벅뚜벅.

뚜벅뚜벅.

스탯과 스킬은 사라졌지만, 예민한 감각은 그대로.

건기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감각을 집중해 자신을 따라오는 발걸음을 분석했다.

똑같은 박자와 속도.

미행자의 수는 한 명.

녀석은 건기의 걸음걸이를 완벽하게 모방하고 있었다.

“뭐지?”

건기는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인파 속으로 몸을 섞었다.

그리고 소금이 물에 녹듯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며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뿌우우우.

부둣가에 가까워지자 뱃고동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건기는 꺾어지는 골목 모퉁이를 돌아 거기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슬며시 고개를 빼서 미행자를 확인했다.

“따돌렸나?”

수상한 자는 없었다.

건기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미행자는 완벽하게 기척을 지우지 않았을까?

미행하는 일을 맡는 이들은 보통 기척을 지우는 스킬이나, 그러한 훈련을 받는 게 기본이었다.

“마치 일부러…….”

일, 부, 러?

건기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혹시 마왕이 보낸 자객?

이건 경고인 걸까?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

건기는 서둘러 ‘길드’라고 쓰인 건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안에 들어서자, 길드원이 반갑게 건기를 맞아 줬다.

천장을 돌고 있는 실링 팬.

안쪽에 놓인 소파와 정수기.

24시간 대기 중인 무장 경비원.

거대한 TV 옆에는 포스터 한 장이 걸려 있었다.

[마탑 속 제2의 인생!]

[공용어 ‘한국어’ 무료 강습!]

[인생역전! 승승장구!]

‘지금 날 엿 먹이는 건가?’

건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전생에서 일어난 실수가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모든 적을 물리쳤으며

언제나 승리뿐이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오만과 방심에 발등이 찍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해 메피스민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 실수는 메피스민의 책략.

300번 넘게 패한 녀석이 건기에게 이길 수 있었던 비기였다.

아무리 높은 스탯,

강력한 스킬,

풍부한 경험을 갖춰도,

방심하면 끝.

건기는 그것을 똑똑히 느꼈다.

완벽한 통제.

철저한 계획.

그리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

그것이 절실했다.

“후우, 후우. 메피스민, 나한테 두 번씩이나 기회를 준 건 네 실수야. 후우, 후우.”

심호흡.

건기는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겨우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상대는 마탑 최강의 생물.

전생의 막강한 스탯과 스킬이 없다면,

마탑 내에서 최대한 쥐어짜낼 수밖에 없었다.

일의 순서는 명확했다.

우선, 재력.

그 다음 권력.

마지막으로 세력.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서둘러 상층으로 가는 것.

정상 도시가 있는 80층.

그곳에 다다르기만 하면, 뭐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건기는 당장 빈 상담 창구로 걸어가 상담원을 불렀다.

“이봐!”

“손님. 죄송하지만, 번호표를 뽑아 주시겠어요? 뒤에 다른 손님들이 계시거든요.”

“번호표?”

건기는 S급이 된 이후로 번호표를 뽑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면에서 프리패스.

물론 아주 초보 때야 그랬겠지만, 그건 벌써 2년 전 일이었다.

“지금 나한테 번호표를 뽑으라고 말한 거야? 난 여기서 당신한테 상담 받을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건기의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에 상담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하! 혹시 지난 번호표를 갖고 계신 건가요? 그럼 알겠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가장 최상위 층으로 갈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지?”

상담원은 건기의 말에 외눈 안경 같은 것을 눈에 끼웠다.

그것은 ‘외눈’이라 불리는 특수한 아이템으로, 상대의 스탯 창을 볼 수 있었다.

“엥? 흐음…….”

상담원은 외눈을 낀 채 건기를 이리저리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따위 스탯으로? 제정신인가?’

“죄송하지만, 현재로선 아주 낮은 등급의 일자리밖에 구하실 수 없겠는데요?”

“알고 있어. 그냥 지금 기준에서 가장 높이 갈 수 있는 일로 줘. 대출도 팍팍 해 주고.”

“알겠습니다. 기한 내에 갚지 못하시면…….”

“못하면 현상 수배가 되지. 나도 잘 알아.”

너무 잘 알아서 화까지 났다.

“네,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건기는 대출 증서를 든 채 길드 사무소를 나왔다.

그리고 불안한 눈길로 길거리를 살폈다.

부둣가로 향하면서 딱히 미행하는 기척은 느끼지 못했다.

정말 따돌린 건가.

아님 아직도 미행당하는 중인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도착한 곳은 10번 부두.

짐을 나눠 받기 위해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건기도 그들을 따라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가 오자, 대출 증서를 내밀었다.

“여기.”

“흐음.”

짐을 나눠 주는 인부.

그는 양쪽 귀가 없었다.

정확히는 잘려 나간 것이었다.

그는 대출 증서를 읽고는 해당하는 짐을 내밀었다.

“보아하니 꽤나 실력이 있는 모양인데, 왜 이런 허드렛일을 하려는 거지?”

뜨끔.

건기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사정이 있어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만 알려 준다.

그것이 최고의 대화 방식이었다.

“그렇구먼. 하긴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인부는 건기에 대한 의문을 가볍게 넘겼다.

그것이 어른의 사고방식.

그는 그저 대출 증서에 맞춰 짐을 내주면 그만이었다.

시스템의 일부인 개인적 아공간.

건기는 인벤토리를 열어 그 안에 짐을 밀어 넣었다.

커다란 짐은 인벤토리 안으로 마술처럼 사라졌다.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무게는 최대 200kg까지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내연기관은 쓸 수 없는 마탑의 특성상,

이 인벤토리가 모든 물류 유통의 핵심이었다.

“몸조심하시고!”

인부는 마지막으로 임시 통행증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건기는 임시 통행증을 챙겨 항구를 떠났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인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깥에서 상당히 험하게 살다 온 건가? 근데 보아하니, 뒤에 누가 따라가는 것 같은데 알려 줘야 하나? 하긴, 내 알 바 아니지.”

건기는 장벽 아래 개구멍처럼 뚫린 출입구를 통과했다.

장벽은 아스팔트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었다.

세워진 것이 아니라 천장에 ‘매달린’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무기가 없는 상황.

지금 당장 항구에서 살 수 있는 무기는, 고작 노멀소드 정도.

지금 주머니 사정으로 마총은 꿈도 꾸지 못했다.

마탑 주민들은 마탑의 생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권’이 인정되어 무기를 소지할 수 있었다.

단,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구슬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마총’과 구슬을 소재로서 가공해 만든 병장기에 한해서였다.

이는 오직 그것들만이 마탑의 생물에게 유효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마탑 밖에서 생산된 총이나 폭탄 등의 화약 병기를 들여온다면,

그것은 인간을 대상으로 쓰겠단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MGF와 유엔은 평화 유지와 소요사태 방지를 위해서 이를 엄하게 단속했다.

결국 건기는 그냥 가던 길 가기로 했다.

무기야 뺏어 쓰면 그만이었다.

포장된 바닥에서 비포장으로.

건기는 황야에 섰다.

“100층까지 언제 가냐?”

바람 한 점 없는 누런 들판.

모래가 되기 직전의 건조한 흙.

그 흔한 풀 한 포기조차 없었다.

건기는 흙먼지가 일지 않도록 최대한 간결하게 걸었다.

그의 시선은 황야 저편,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솟은 계단탑에 꽂혀 있었다.

층을 오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외관만 봐선 대리석을 깎아 만든 신전의 기둥처럼 보였다.

건기는 계단탑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검문소에 다다랐다.

계단탑은 거주 구역과 황야 어디든 있었고,

1층처럼 중요한 곳에는 층 전체에 계단탑 검문소가 있었다.

“통행증!”

건기는 검문소에 통행증을 내밀었다.

그리고 통행증을 확인 받는 동안 마탑에 발을 들인 이유를 떠올렸다.

마왕, 딱 한 놈.

그놈만 족치면 됐다.

모든 일의 원흉인 그놈만 죽일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걸 하찮게 여겼고,

누구라도 죽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전생은 실패.

그러니 이번 생은 다르게 시도하기로 했다.

“흐음, 어디 보자. 10층까지 가는 임시 통행증이군. 가도 좋네.”

건기는 통행증을 돌려받은 후,

계단탑으로 들어가 나선형의 계단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진심을 토해 냈다.

“기다려라.”

건기는 침을 한 번 탁 뱉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개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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