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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무거운 겜심

선거가 끝나면 그 결과에 따라 정치권에선 '민심'을 언급한다. 민심이 당락을 결정한 것이니, 이겼든 졌든 이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발언은 레퍼토리처럼 반복된다. 굳이 '민심이 천심'이란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민심이 정치인들에겐 공기처럼 소중한 것임을 누구나 알 것이다.

'스타크래프트2' 시리즈 마지막 확장팩인 '공허의유산'이 국내 발매되는 날, 두 정치인이 현장을 찾았다. 야당에선 전병헌 의원이, 여당에선 서병수 부산시장이 '공허의유산'을 사기 위해 모인 게임 팬들에 섰다. 서 시장은 행사 전에 기자실을 들러 기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했는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서 열린 지스타를 코앞에 둔 행사장을 방문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공허의유산' 런칭쇼는 이윤열 결혼식이라는 이벤트가 더해져 이목이 집중됐다. 아프리카TV와 블리자드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고, 교묘한 상술이 덧붙여져 결과적으로 세계가 집중하는 이벤트가 된 상황. 서 시장이 현장을 찾은 이유를 그가 단상에 오를 때서야 알 수 있었다.

현장에는 천여명의 국내 팬들이 모였다만 아프리카TV를 통해 영어와 중국어로 동시통역 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얼마가 이를 지켜봤는지는 모른다. 전병헌 의원이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 회장과 국제e스포츠연명 회장 자격으로 축사를 했고 서 시장이 바통을 이었다.

두 정치인 모두 고무됐다. 현장 분위기가, 생방송으로 세계로 송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흥분시켰던 것 같다. 평소에 원고 없이 말하는 전 의원이지만 이날만은 준비해 온 원고를 가져왔고, 마치 유세하듯이 주요 부분에 힘주어 말을 했다. 게임팬들 사이에선 '갓병헌'으로 알려진 그이기에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 건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서병수 시장도 이러한 반응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경쟁상대인 전 의원이 달궈놓은 분위기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자신과 부산의 게임사랑을 어필하고 싶었을까, 전 의원보다 목소리는 컸고 자신감도 넘쳤다.

그러나 분위기는 달랐다. 서 시장이 e스포츠 역사에 전설처럼 여겨지는 '부산 광안리 10만 명'을 외쳤을 때나 '게임회사를 부산서 차려달라'고 주문했을 때도 박수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축제 분위기에 취해 들뜬 상황에서 좋은 말에 화답을 해 줄만도 한데, 게임팬들은 냉정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서병수 시장을 알 것이다. 게임매출의 일정부분을 무조건 세금으로 거두자는 '손인춘법',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같이 4대 중독물로 규정한 '4대 중독법'에 서 시장이 국회의원 시절 서명했다는 사실을. 지스타가 매년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의원이지만 게임 죽이기에 나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고 그 미운털은 아직도 박혀 있다.

서 시장은 개인적으로 억울할 것이다. 국회의원들끼리 '품앗이' 마냥 법안발의에 이름 올려주는 것이 관례도 그 당시엔 지금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미운털을 안겨줄지 몰랐으니까. 더불어 부산서 무슨 행사만 열리면 나서서 '게임사랑'을 얘기해 왔는데 여전히 싸늘한 시선을 보면 기자라도 서운할만 하다.

그러나 개인적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고 정치인이면 더더욱 그렇다. 선거가 끝나고 진 진영에선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민심은 쉽게 움직이지 않으니 행동을 통해 믿음을 쌓아야만 하고 그제서야 바뀐다.

서병수 시장 임기는 앞으로 3년이 더 남았고 재선을 할 수도 있다. 다시 지역구로 돌아가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다. 부산시장으로서 여러 번 게임산업에 대한 투자육성 의지를 밝혔다만 아직 현실화 된 것은 없다. 부산이 게임의 도시로 진정 자리잡을 수 있게 시장으로 지원하고, 나아가 동료 의원들을 설득해 '게임 진흥법'이라도 내놓으면 겜심이 움직일까. 서 시장이 말로 움직이려는 겜심은 여전히 무겁다.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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