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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소프트맥스 사장

인생을 바꾼 위기

국산 PC게임 최초로 10만장 이상 판매된 게임을 들으라고 하면 창세기전이 유일하다. 외산 게임이 시장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요즘도 창세기전의 인기를 식을 줄 모른다. 95년 출시된 시리즈 첫편부터 매년 한 작품이 선보일 때 마다 국내 PC게임 판매 기록을 경신하며 50만 카피라는 누적판매를 기록했다.

이 대박의 신화를 일궈낸 사장이 바로 소프트맥스를 정영희이다. 아직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차 없었던 93년, 정 사장은 7년여를 근무하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게임 소프트웨어를 전문업체 갑인물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해 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몸담는 동안 게임 강국이라는 일본을 오가며 국내 게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채 1년도 못돼 부도를 맞게 됐고, 정 사장은 자신의 퇴직금까지 털어 가면서 회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세상은 그녀의 생각대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정 사장의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오히려 그녀는 창업이라는 정공법으로 2차 도전에 나서게 된다. 그것이 지금의 소프트맥스를 탄생시킨 배경이었다.

당시 아마추어 게임 동호회 활동을 하던 조영기(현재 소프트맥스 이사), 최연규(실장), 전석환(수석팀장)이 가세하면서 소프트맥스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창업 초기부터 철저하게 개발과 경영을 분리해 왔던 소프트맥스에서 회사 운영은 정영희 사장의 몫이었다. 1-2년 동안은 수중에 있던 자산을 털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직원들의 월급을 마련했다.

당시만해도 많은 게임 개발업체들이 월급을 스스로 희생해 가며 개발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 사장은 직원들에게 그러한 어려움을 주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정 사장은 창업 이후 내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샐러리맨으로 지내왔던 그 전까지의 삶과 경영자로서의 생활은 생각하는 방식에서부터, 행동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며 당시를 회고한다.

이후 리크니스, 스카이&리카 등의 게임이 출시되면서 소프트맥스라는 이름이 서서히 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95년 12월 창세기전을 출시면서 회사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국내최초로 시뮬레이션 RPG를 표방했던 창세기전은 국산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으면서 게이머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96년 12월엔 창세기전2가 소개됐고, 98년 3월 창세기외전-서풍의 광시곡, 98년 12월 창세기외전-템페스트, 99년 12월 창세기전3가 출시되면서 소프트맥스는 외산게임이 대세를 이루던 시장에서 국산 게임 업체의 자존심으로 우뚝 서게된다. 국내서도 이른바 게임 브랜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코디네이터 경영

사실 소프트맥스가 단기간에 국내 최고의 PC게임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회사가 창업 초기부터 개발과 경영이 분리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내 대분분의 게임 개발사와 달리 정영희 사장은 개발자 출신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이 게임 개발에 간섭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 사장은 개발은 개발자가 담당하고 경영인은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해 주는 게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CEO라고 하면 흔히 나를 따르라는 식의 경영 스타일을 떠올리지만, 내게는 코디네이터 스타일의 경영이 적합했다고 말한다.

실제 국내의 많은 게임 개발사들은 개발과 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으며, 가장 실력이 뛰어난 개발자가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가족적인 형태는 게임 만들기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기업활동을 할 때는 많은 장애가 따른다.

정영희 사장이 소프트맥스를 설립하고 가장 먼저 시행했던 일도 개발자들로 하여금 조직 문화를 익히게 했던 일이다. 개발에는 간섭하지 않지만 기업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존의 가족적인 틀에서 벗어나게끔 한 것이다.

요즘 정사장은 고참 개발자들에게 관리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조직이 확대될수록 누군가가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외부에서 전문 관리자를 영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솥밥을 먹던 개발자들보다는 거부감이 클 것이라는 게 정 사장의 생각이다.

문제는 개발자들 대부분이 게임 만들기에만 전념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 사장은 한꺼번에 바뀌길 바라진 않는다. 그녀는 직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그들을 조직에 맞도록 변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정영희 사장의 코디네이션이다.


멀티플랫폼으로 세계 시장 공략

안에서는 코디네이터를 자처하는 정 사장이지만 시장으로 나가면 정사장은 우직한 경영인을 탈바꿈한다.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도 고집스러운 개발자들을 한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더 고집스러움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고집스러움은 여러곳에서 나타난다.

소프트맥스는 관계된 유통사의 부도로 이미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그 때마다 번들과 주얼 판매에 대한 유혹이 많았다. 당장 번들 계약을 체결하면 경영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짭짤한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정 사장은 단 한번도 자사 게임을 저가 시장에 내 놓은 적이 없다. 당장의 이익이 될 순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을 망치는 일이며, 소프트맥스의 인지도를 떨어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소프트맥스를 믿고 정품 게임을 구입한 게이머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도 저가 판매를 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 때문에 소프트맥스는 손해를 보기도 했고 기존의 유통 업체들로부터 미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점에 대해서는 정 사장의 소신은 뚜렷하다. 기업과 기업인은 시장을 길게 내다 보고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소프트맥스는 지금까지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신화창조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본격적인 게임 전문 퍼블리셔로 자리잡기 위해 게임 전문 유통 자회사 디지탈에이지를 설립했으며, 온라인 쇼핑몰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엔 일본 동경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비디오게임 시장 공략에 나섰으며, 자사 온라인 사이트 4LEAF를 통해 온라인게임 사업은 물론 무선인터넷게임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정영희 사장은 게임 개발은 마라톤과 같다. 소프트맥스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행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준비단계일 뿐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며 소프트맥스는 새로운 브랜드 창출과 동시에 기존 브랜드의 멀티플랫폼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글로벌한 업체로 거듭나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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