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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 이브온라인, 2년을 견뎌 '복수'한 남자의 이야기

수많은 게임들이 플레이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벌어집니다. 게임 내 시스템, 오류 혹은 이용자들이 원인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은 게임 내외를 막론한 지대한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데일리게임은 당시엔 유명했으나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져가는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는 '게임, 이런 것도 있다 뭐', 줄여서 '게.이.머'라는 코너를 마련해 지난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게.이.머] 이브온라인, 2년을 견뎌 '복수'한 남자의 이야기

'게.이.머'의 열 번째 시간에 다룰 사건은 CCP가 개발한 또 하나의 세계라는 평을 받고 있는 온라인롤플레잉게임 '이브온라인'에서 일어난 대 사건입니다. 엄청난 자유도와 수백, 수천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우주 전투 그리고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전투 피해 액수로 게임을 즐겨보지 않은 이용자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게임인데요.

이번 시간에는 복수를 위해 2년을 준비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수천명이 소속된 한 집단을 내부에서부터 완전히 파괴한 이야기는 한편의 대서사시를 방불케 합니다.

◆'이브온라인'이 뭔데?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MMORPG '이브온라인'은 2003년 5월 6일 CCP게임즈가 출시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천체관측용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가 이를 기반으로 게임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이력이 있죠.

현재 단일 서버로 전세계 동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평균 동시 접속자 수 3만여 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 게임 개발은 아이슬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CCP게임즈에서 하고 있으며 게임 서버는 영국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2003년에 출시된 게임이지만 지속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있어 지금봐도 엄청난 퀄리티의 그래픽을 자랑하기도 합니다만 그만큼 최적화가 잘되어 있기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이브온라인'은 온라인 샌드박스형 게임으로 튜토리얼만 끝나도 뭘 해야할지 알 수 없는 이용자가 많아 진입장벽이 높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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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만큼 '뭘해도 된다'는 식의 높은 자유도가 가장 큰 특징인데요. 한 예로 게임 내 최고의 군수물자회사인 CPP는 게임 운영진들이 직접 운영하는 회사인데요. 여기 잡입해 있던 한 이용자가 기밀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몰래 훔쳐보고 그 내용을 다른 이용자들에게 공개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 내용은 "이제 이용자도 많으니 우리 캐시템 많이 만들어서 돈 좀 긁어모아 보자", "아이템 좋은걸 캐시로 좀 팔아보자"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이 내용이 '이브온라인' 내 뉴스와 각 얼라이언스(길드 연합) 내부 뉴스로 전해지자 이용자들은 당연히 분노하고 진위 여부를 밝히라고 요구했지요.

그런데 운영진 측은 당당하게도 "해당 메시지는 본인들이 작성한 메시지가 맞다"며 "캐시 아이템의 기획과 개발은 진행 중이며 변함이 없다"고 공지를 했습니다. 이런 반응에 더욱 분노한 이용자들은 CPP의 활동 영역인 상업지구를 마구잡이로 폭격했습니다.

신규 이용자와 회사(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이용자들은 황폐화된 상업 지구의 모습과 계속 폭격 당하는 중인 상업 지구를 멀거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죠. 모든 제반 시설들이 파괴되거나 파괴되는 중이었기에 정상적인 게임 이용 조차 힘들었습니다.

결국 운영진은 각 얼라이언스들의 대표를 소집해 회의를 했고 회의를 통해 캐시아이템은 '외형 아이템'에 한정한다고 협의했습니다. 그런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야 얼라이언스 대표들은 함선들을 물러나게 했죠

이 대표들은 지금도 여전히 CPP내 이용자 스파이를 심어두고 운영진인 CCP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매번 개발사 측이 아이템을 출시할 때마다 모든 아이템을 체크하고 문제가 없는지를 검토합니다. 문제가 될 소지가 보일 경우 게임 내 가장 큰 함선인 타이탄을 상업 지구 위에 위치시키는 무력 시위도 서슴치 않죠.

이런 다소 불리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도 개발자 측은 게임 내 일은 게임 내의 규칙에 따라 처리해야한다는 원칙에 따라 게임 외 약관으로 이용자를 묶어두거나 제재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이브온라인 홈페이지 메인
이브온라인 홈페이지 메인

이런 서로 간의 신뢰가 있기에 이만한 자유도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초 거대 얼라이언스 'BoB' 우주의 패자가 되다

'이브온라인' 론칭 초기에는 십여명 정도의 길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길드가 모인 '길드연합'이 탄생하며 이용자 그룹은 급격히 커져가는데요. 수많은 길드들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이 집단을 얼라이언스라고 부릅니다.

작은 길드들 수십, 수백개가 모여 하나의 연합을 형성한 이 얼라이언스들은 이용자 영토가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을 적에 수십명이 몰려다니면서 이용자들을 학살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4개 길드연합은 BoB, ASCN, D2, LV였습니다. 이들은 '이브온라인'내 우주를 4등분하고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넓은 세력권을 자랑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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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중에 눈에 띄는 길드연합은 BoB(밴드오브브라더스)였는데요. 이 BoB는 공격적이고 전략적인 사람들이 모인 이용자 공격과 약탈을 주고 삼는 이용자들이 모인 해적 길드였습니다. 나머지 길드들에 비해 약탈과 영토 침범 등에 주가된 활동을 했기에 그 악명은 우주 끝까지 퍼져있었습니다.

게다가 BoB는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던 ASCN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띄게 되는데요.

ASCN이 '이브온라인' 최초로 아바타급 타이탄을 건조하자 최초 타이탄 건조에 실패한 BoB가 분노해 전쟁을 선포하면서 시작됐죠. 아바타급 타이탄은 건조에만 2달 이상의 시간이 투자되고 당시 기준으로 말도 안되는 양의 광물을 요구하는 거대 얼라이언스에서도 건조에 애를 먹던 전함이었습니다.

비록 수와 병참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ASCN이었지만, 전투 경험이 풍부한데다 메인 서버가 위치한 영국 출신이라 반응 속도 면에서 따라갈 자가 없었던 BoB 측 파일럿들의 공세를 이겨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보존된 잔해의 모습
보존된 잔해의 모습

이 사건은 위키에 기록될 만큼 큰 사건이었으며 파괴된 'Steve'의 잔해는 BoB의 요청에 따라 C9N-CC 성계에 보존됐습니다. 아직도 그 성계에 가면 'Steve'의 잔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전투 이후 BoB는 약 1년 반 동안 BoB의 영향력은 전 이브를 아우르게 됩니다. 전 우주의 패자가 된 것이죠.

◆거대한 복수극을 불러올 작은 불씨의 탄생

이제 최강이 된 BoB는 점차 그 세를 불려나갔고 멸망한 ASCN 말고도 다른 두 얼라이언스는 소규모 집단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BoB는 3000명이 넘는 길드원을 보유하며 전 우주를 제 살 주무르듯 했지만 유명세와 악명이 동시에 커져갔는데요. 단일 얼라이언스가 패권을 쥐고 흔드는 것을 경계하는 이용자들이 많았던 데다가, BoB 내부에 운영진이 개입해 이득을 가져다줬다는 스캔들도 터지면서 민심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한 이용자가 나타납니다. 그의 아이디는 'Haargoth Agamar'로 BoB의 운영 권한을 가진 고위직인 디렉터까지 맡았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그가 달랐던 점은 단 한 가지. 복수를 위해 BoB에 들어왔다는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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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 BoB에게 습격을 당해 우주 공간에서 모든 재산을 털렸었습니다. '이브온라인'은 우주 공간에서 배가 폭파되면 배가 그냥 사라져버리며 화물의 50% 정도가 그 자리에 남습니다. 남아 있는 화물은 주인 없는 아이템으로 분류되 아무나 가져갈 수 있게 되죠. 그는 마지막 자원은 남겨달라고 애원했지만 BoB는 이를 묵살하고 초보자를 짓밟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무려 2년 동안 복수를 위한 칼날을 갈았습니다.

새로 아이디를 만들어 BoB에 가입한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약탈해 자신의 자원을 해적들에게 나눠줍니다. 고위층에게 접대성 뇌물도 바치며 본인의 캐릭터에 투자하는 것보다 길드에 투자를 더욱 크게 합니다. 이렇게 2년 동안 모두의 신뢰를 받은 그는 BoB의 디렉터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디렉터 자리에 오른 그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자신과 같은 아무런 자비 없이 짓밟히는 경험을 다른 초보자들에게 경험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는 BoB가 다시 재기하지 못하게 완벽히 말살할 계획을 조금씩 세워나갑니다.

얼라이언스의 세부 내역 접근 권한을 얻었다
얼라이언스의 세부 내역 접근 권한을 얻었다

기다림 끝에 BoB 길드가 GoonSwarm 길드와의 항쟁에서 고착 상태에 빠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전쟁이 길어지자 BoB는 함대를 만들기 위해 길드원 개인의 것까지 모아 창고에 저장해둔 것이죠.

'Haargoth Agamar'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창고 자원을 확인한 그는 적대 길드인 GoonSwarm 길드 첩보부장인 'The Mittani'와 연락해 자신의 계획과 GoonSwarm 길드로 전향할 의사를 밝힙니다. 그의 동의를 얻은 'Haargoth Agamar'는 아무도 모르게 'The Mittani'에게 디렉터 권한을 양도했죠.

'The Mittani'는 'Haargoth Agamar'가 제공한 디렉터 접속 권한을 이용해 BoB의 완전 삭제를 위해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BoB의 인트라넷을 헤집어 놓고 창고에 그득한 BoB의 자산을 빼돌림과 동시에 BoB 소속 회사(소규모 길드)들을 강제로 퇴출시켰습니다.

모든 조치가 끝난 후 혼란에 빠진 BoB 얼라이언스 소속원들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Haargoth Agamar'는 계획의 마지막인 빨간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얼라이언스의 해산 버튼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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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라이언스 해산(Disband) 버튼을 누르자 'Band of Brothers'라는 얼라이언스는 한순간에 없어져버렸습니다 BoB가 차지하고 있던 Delve와 Fountain 지역은 순식간에 임자 없는 영토로 변했죠.

그와 동시에 계획의 중심인 두 사람은 바로 'Band of Brothers'라는 이름의 얼라이언스 전 BoB 출신들이 이름을 되찾지 못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GoonSwarm 길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BoB가 차지하던 모든 영토에 총 공세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상대로 전 BoB 출신들은 날벼락을 맞게됩니다. 전 BoB 멤버들은 BoB의 중심 꼽 중 하나였던 Reikoku를 중심으로 Kenzoku 라는 얼라이언스를 만들어 영토를 수복하기는 했으나, 3주 이상 영토를 차지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각종 방어 시설들 특히 적 캐피탈 쉽의 진입을 막는 사이노 재머들이 전부 정지돼 버렸기에 방어에 어려움을 겪었고 많은 영토를 빼앗기고 말았죠.

◆실패로 끝날 뻔한 복수…거대 연합의 참전

하지만 BoB도 강력했습니다. 애초에 뛰어난 컨트롤을 갖춘 PvP 전문 얼라이언스였기에 불리한 상황에서도 엄청난 콘트롤을 보이며 Goonsworm 길드가 뺏어간 영토를 하나씩 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GoonSwarm 길드도 선방했지만 BoB의 완벽한 몰락을 위해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때 평소 BoB의 압박에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평화를 사던 다른 얼라이언스들이 BoB의 위기 소식을 듣고 GoonSwarm 길드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연합이 바로 GoonSwarm, Northern Coalition, Pandemic Legion 연합군. 통칭 GNP함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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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BoB 출신들이 모인 Reikoku 진영은 그 대공세에 맞서 엄청난 전술로 근 한 달 가량을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면서 싸웠지만 사상 최대 규모의 우주 연합군을 상대로 결국 패배했습니다.

GoonSwarm 길드는 이후 1년간 BoB의 영토였던 Delve를 차지했고 다른 얼라이언스들도 각자의 몫을 챙겼습니다. 이전 BoB 멤버들은 재결합해 'IT Alliance'를 설립했지만 저 먼 외곽 지역에서 근근히 살아가게 되죠.

◆한편의 대서사시와도 같은 이야기, 이걸 트레일러로?

BoB해체 사건 이후 제작사인 CCP에서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영상을 만들어 '이브온라인'의 홍보영상으로 사용합니다.

'복수를 위한 시간은 언제나 당신의 것'이라는 말로 시작한 3분 가량의 이 영상에서는 'Haargoth Agamar'의 복수 과정을 잘 설명해놨습니다. CCP는 이런 특징적인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이를 정리해 프로모션 영상화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게.이.머] 이브온라인, 2년을 견뎌 '복수'한 남자의 이야기

'당신이 내린 결정이 전 세계의 지도를 바꾸었고, 물론 수천명의 삶도 바꿨다'라는 영상 속 구절은 이 사건들을 대하는 CCP의 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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