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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좌충우돌 아찔한 잊지못할 기억, '모락모락TV' 출연

[체험기] 좌충우돌 아찔한 잊지못할 기억, '모락모락TV' 출연
"국내 최고의 게임 전문웹진 데일리게임 문영수 기자입니다. 이렇게 모락모락TV 시청자들께 인사를 드리게 돼 저도 참 놀랍습니다"

세상에, 그동안 지면으로만 이름을 알려오던 기자가 방송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아프리카TV(대표 서수길)가 진행하는 모바일게임 전문 방송 '모락모락TV'에 전격 출연한 것.

지난 5월 아프리카TV와 KT미디어허브의 업무 협력 체결을 통해 개설된 모락모락TV는 매주 신작을 소개하고 출연진간 불꽃튀는 게임 대결이 펼쳐지는 모바일게임 전문 방송이다. 걸걸한 입담을 자랑하는 성승헌 캐스터와 '나는 펫 시즌4' 출연자 유아름양, 죽은 게임도 살린다는 PD대정령과 핸디게임 백세현 부사장, 그리고 아프리카TV의 재간꾼 길군과 용군이 출연한다. 여기에 나름 게임업계 '전문가' 포지션으로 기자가 방송에 투입된 것.
출연 결정은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2주 전 있었던 아프리카TV 임원과의 저녁 자리에서 "방송 재밌겠던데 사실 저도 무대 체질이거든요"라는 술김에 던진 한마디가 화근이 됐다. 이튿날 "기자님 출연 확정됐습니다"는 말을 전해듣자마자 전날 마신 술기운이 싹 가셨던 기억이 난다.

방송 출연은 사실 기자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도 있지 않던가. 그도 그렇지만 남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어떨지 예전부터 궁금했다. 누구나 한 번쯤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한 기억이 있을 터.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꼭 관찰하고 싶었다. 3자의 눈을 통한 자아찾기인 셈이다.

'방송 그까이꺼 대충~'이라고 생각했던 본래의 자신감은 방송 일자가 다가올수록 점차 줄어들기만 했다. 거울을 바라보며 대사를 읖조려보기도 하고 억지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다. 물론 어색하기 이를데 없었다. 모락모락TV는 원래 매주 화요일 저녁 방송되는데, 내부 사정 상 이번 주만 목요일(8일)로 연기됐다. 덕분에 이틀의 말미를 얻었지만 여전히 가시방석에 앉은 듯 했다.

드디어 방송 당일. 마감을 마친 기자는 오후 5시 쯤 서울 인근 스튜디오로 출발했다. 30도를 훌쩍 뛰어넘는 후덥지근한 날씨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럭저럭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깔끔한 모습으로 데뷔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오후 6시 모락모락TV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생전 처음 접한 방송 스튜디오는 대형 편의점 정도의 크기였다. 어색하지만 활기찬 목소리로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다른 출연진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첫 출연인만큼 현장에 일찍 와달라는 제작진의 요청이 있었던 터였다.

여전히 남아있는 묘한 긴장감을 떨쳐내고 싶었던 걸까. 제작진들에게 쉴새없이 질문을 던져댔다. 방송은 몇 시간이나 진행되나요? 혹시 악플이 많이 달리나요? 받은 대본에는 제 대사 분량이 없던데 전부 애드립으로 해결해야되나요? 등등.

제작 PD의 표정에 고민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앞서 전달받은 대본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당초 대본은 방송 시작부터 종료까지 기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쪽이었는데 그러면 위험하단다. 첫 출연인만큼 아직 현장 분위기에 익숙치 못한 기자가 방송 사고를 낼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였다. 이왕 하는 방송, 게임업계 전문가로서 뭔가 스마트하면서도 냉철한 이미지로 비춰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려면 특정 코너에 잠깐 출연해 유창한 말솜씨로 게임에 대한 식견을 늘어놓고 퇴장하는게 가장 깔끔하겠다는 계산이 섰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모락모락TV의 벌칙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2부 게임 대결에서 꼴찌를 한 출연자는 시청자가 뽑은 벌칙을 수행하게 되는데, 그 수위가 가히 도를 넘었다(?). 아름양은 이 무더운 한 여름에 두툼한 패딩을 입고 홍대에서 팥빙수를 먹어야 했으며 용군은 비명을 지르며 번지점프를 뛰어야 했다. 이같은 벌칙을 깔깔거리며 보고 즐길 용의는 충분했지만 직접 벌칙 미션을 수행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오금을 저리게 했다.

"PD님 말씀대로 방송 사고를 낼지도 모릅니다. 첫 출연인만큼 1부만 진행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자와 제작 PD간의 모종의 계약이 성립됐다.
[체험기] 좌충우돌 아찔한 잊지못할 기억, '모락모락TV' 출연


◆예능인의 피같은 걸 끼얹나?

오후 7시. 출연진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성승헌 캐스터와 아름양, '백부' 백세현 부사장과 대정령이 속속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접하기 힘든 유명 방송인들을 바로 눈 앞에서 보는 것은 언제나 색다른 경험이었다. 시종일관 유쾌한 입담으로 스튜디오 분위기를 띄운 성승헌 캐스터는 뭐 워낙 인기 스타라 친숙했고 유아름양은 연예인 간지를 제대로 내뿜어 눈도 제대로 맞추기 힘들었다. 늘 가면만 쓰고 다녀 정체가 궁금했던 게임 방송의 달인 대정령의 실체도 이날 확인할 수 있었다.

오후 8시. 스튜디오의 공기 밀도가 뭔가 묵직해지기 시작했다. 한가하던 분위기도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제작진은 마이크를 설치하고 조명도 이리저리 조절하기 시작했다. 방송이 임박했음을 느꼈다. 더불어 긴장감도 폭발했다.

방송 시작 8분전. 일부 흡연자들이 니코틴 충전이 필요하다며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섰다. 성 캐스터는 이시간에 담배를 태우러 간다며 끌끌 혀를 찼다. 기자는 마지막까지 대본 습득에 열을 올렸다. 그리 많지 않은 대사량이었지만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치 않겠다는 자세로 임했다. 패널들은 그저 신나게 놀 듯이 하면 된다는 속 편한 조언만 해주고 있었다. 물론 이해는 안갔다. 도대체 그 논다는 것이 당췌 무엇이란 말인가.

방송 3초전. 침을 꼴깍 삼켰다. 널찍한 전면 모니터에 출력되고 있는 대본의 글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대본은 안봐도 될만큼 달달 외우긴 했다. 긴장만 안하면 됐다. 물론 초긴장 상태였지만. 억지로 지은 미소를 지은 표정은 영 볼만한 것이 못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모락모락TV 10화의 막이 올랐다. 성승헌 캐스터의 능수능란한 오프닝에 이어 시작된 첫 자기 소개 시간.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다음은 술술 풀리리라.

오오, 이게 웬걸, 당초 우려와 달리 술술 대사를 읊어내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름 비장하게 준비한 애드립도 섞어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래 이대로만 가자.

그런데 갑자기 이어진 돌발상황. 기자의 외모가 인기 BJ '소닉'과 쏙 빼닮았다는 길군의 애드립이 나와 버렸다. 뭐지, 이건 대본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기자가 (BJ소닉보다) 더 잘생겼을거라고 응수해 버렸다. 실수였을까. 반응은 그리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신' 간지를 뿜어내는 아름양과 3초간 아이컨택을 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자기소개 과정에서 기자가 미혼이란 사실을 안 성승헌 캐스터가 짖궂게도 홍일점 아름양과의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 준 것. 물론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약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어진 3초의 시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름양을 바라봤다. (성캐님 감사합니다)

모락모락TV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코너를 하나씩 진행할때마다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기자의 긴장감도 차츰 엹어져 갔다. 설마 예능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일까. 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착각은 자유라고 했던가. 아니나다를까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피식거리며 방송을 지켜보던 작가가 갑자기 표정이 바뀌더니 화이트보드에 급히 뭔가를 쓰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화이트보드에는 '리액션'이라는 세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너무 얼어있으니 좀 웃고 몸동작 좀 크게 하라는 주문이었다.

리액션?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군대 시절 얻은 별명이 '문보트'였다. 로봇같이 딱딱한 자세로 일관돼 있다고 해서 선임병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그만큼 경직된 기자에게 무슨 리액션을 취하라는 말인가. 그러고보니 다른 패널들의 몸동작은 가히 리액션의 교본이라 부를만한 수준이었다. 바로 옆에 앉은 대정령은 유재석이 CF를 찍은 xx치킨의 폭소 안무를 몸소 재현하고 있었고, 길군은 새처럼 팔을 퍼덕이며 오버에 오버를 거듭하고 있었다. 기자는 그저 박수를 치는게 전부였다. 물론 박수말고는 달리 할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작가의 리액션 요구는 묻혀지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느꼈다. 예능인의 피는 애시당초 흐르지 않았다는 것을.
[체험기] 좌충우돌 아찔한 잊지못할 기억, '모락모락TV' 출연


◆백분 토론 아닌데요

그렇게 방송이 흘러흘러 1부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앞서 담당 PD와 말을 맞췄던 바로 그 순간이 임박한 것이었다. 3종의 신작 모바일게임을 소개하고 각 패널별로 분석하는 코너였다. 기자가 맡은 부분은 게임 비평. 다른 패널들이 쉽사리 할 수 없는 쓴소리를 맘껏 쏟아내면 됐다.

물론 이 때도 변함없이 위기가 찾아왔다. 너무 많은 대사를 준비한 것이 화근이었다. 열심히 열변을 토해내고 있는 기자에게 순간 견제가 들어왔다. 왜지? 급히 상황을 판단해보려 애썼다. 시종일관 웃음꽃이 피던 스튜디오에 마치 찬물 같은걸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백분 토론을 보는 것 같다'던 한 네티즌의 채팅이 결정타를 날렸던 것이다. 사상 최대의 위기였다. 기자는 처음으로 꿀먹은 벙어리가 될 뻔했을 정도였다.

다행히 발빠른 패널들이 화제를 전환시켰다. 모락모락TV는 백분토론이 아니라 예능이라는 해명 아닌 해명도 이어졌다. 그사이 기자도 제정신을 찾았고 대사를 길게 해봤자 좋을게 없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무조건 짧고 굵게! 이것이 살아날 유일한 길이었다. 뒷부분은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그렇게 기자가 맡은 모든 코너는 끝이났다. 앞서 말을 맞춘 대로 "기자님이 이제 못다한 마감을 치러 가셔야 한다"는 성승헌 캐스터의 클로징 멘트와 함께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제는 끝났다는 안도감과 잘 해냈다는 대견함에 더 잘하지 못해 아쉬운 자책감까지.

그렇게 기자는 카메라 바깥으로 퇴장했다. 또 한편으로는 무서워지기도 했다. 신나게 떠들고 웃었지만 정작 카메라에 비친 기자의 모습은 어땠을까 하고. 체험기를 쓰는 지금 이순간까지도 소심한 기자는 녹화된 전일 방송분량을 살펴보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또 하나 느낀 것은 예능 프로 진행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항상 웃고 망가지는 예능인들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고민이다. 다음주에도 출연할 것인지, 아니면 '스페셜 게스트'로 남을 것인지.


[데일리게임 문영수 기자 mj@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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